명예훼손죄 성립요건

가. 명예훼손죄에서 공연성의 의의 및 대법원 판례

 1) 공연성의 의의

  명예훼손죄의 관련 규정들은 명예에 대한 침해가 ‘공연히’ 또는 ‘공공연하게’ 이루어질 것을 요구하는데, ‘공연히’ 또는 ‘공공연하게’는 사전적으로세상에서 다 알 만큼 떳떳하게’, ‘숨김이나 거리낌이 없이 그대로 드러나게’라는 뜻이다. 공연성을 행위태양으로 요구하는 것은 사회에 유포되어 사회적으로 유해한 명예훼손 행위만을 처벌함으로써 개인의 표현의 자유가 지나치게 제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대법원 판례는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으로서 공연성에 관하여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밝혀 왔고(대법원 1992. 5. 26. 선고 92도445 판결, 대법원 1996. 7. 12. 선고 96도1007 판결, 대법원 2008. 2. 14. 선고 2007도8155 판결 등 참조), 이는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기도 하다.

 2) 대법원 판례의 법리

  가) 전파가능성 및 인식 등에 관한 증명

   (1) 검사의 엄격한 증명책임

    공연성은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으로서, 특정 소수에 대한 사실적시의 경우 공연성이 부정되는 유력한 사정이 될 수 있으므로, 전파될 가능성에 관하여는 검사의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다(대법원 1997. 2. 14. 선고 96도2234 판결, 대법원 2006. 4. 14. 선고 2004도207 판결 등 참조). 나아가 대법원은 ‘특정의 개인이나 소수인에게 개인적 또는 사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과 같은 행위는 공연하다고 할 수 없고, 다만 특정의 개인 또는 소수인이라고 하더라도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 또는 유포될 개연성이 있는 경우라면 공연하다고 할 수 있다.’고 판시하여 전파될 가능성에 대한 증명의 정도로 단순히 ‘가능성’이 아닌 ‘개연성’을 요구하였다(대법원 1982. 3. 23. 선고 81도2491 판결, 대법원 1989. 7. 11. 선고 89도886 판결 등 참조).

    형법 제309조 제2항의 허위사실적시 출판물에의한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피고인이 허위사실을 적시함에 있어 적시사실이 허위임을 인식하여야 할 것이고, 이러한 허위의 점에 대한 인식 즉 범의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다(대법원 1997. 2. 14. 선고 96도2234 판결).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의 구성요건을 이루는 사실은 그것이 주관적 요건이든 객관적 요건이든 그 입증책임이 검사에게 있으므로 형법 제309조 제2항의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기소된 사건에서,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리는 사실이 적시되었다는 점, 그 적시된 사실이 객관적으로 진실에 부합하지 아니하여 허위일 뿐만 아니라 그 적시된 사실이 허위라는 것을 피고인이 인식하고서 이를 적시하였다는 점은 모두 검사가 입증하여야 하고, 이 경우 적시된 사실이 허위의 사실인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적시된 사실의 내용 전체의 취지를 살펴보아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경우에는 그 세부(細部)에 있어서 진실과 약간 차이가 나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허위의 사실이라고 볼 수는 없다 (대법원 2006. 4. 14. 선고 2004도207 판결).

   (2) 전파가능성에 관한 인식과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

   대법원은 ‘전파가능성을 이유로 명예훼손죄의 공연성을 인정하는 경우에는 적어도 범죄구성요건의 주관적 요소로서 미필적 고의가 필요하므로 전파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있음은 물론 나아가 그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어야 하고, 행위자가 전파가능성을 용인하고 있었는지 여부는 외부에 나타난 행위의 형태와 상황 등 구체적인 사정을 기초로 일반인이라면 그 전파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고려하면서 행위자의 입장에서 그 심리상태를 추인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여(대법원 2004. 4. 9. 선고 2004도340 판결 등 참조), 행위자의 고의를 인정함에 있어 신중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에 따라 대법원 2018. 6. 15. 선고 2018도4200 판결은 피고인이 불미스러운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고자 하는 질문 중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을 한 사안에서 명예훼손의 고의를 부정하였고, 대법원 2020. 1. 30. 선고 2016도21547 판결은 적시의 상대방이 피고인이나 피해자들과 별다른 친분관계가 없더라도 발언의 경위와 내용에 비추어 피고인에게 전파가능성에 대한 인식과 위험을 용인하는 의사가 없었다고 보기도 하였다. 한편 대법원 2001. 4. 10. 선고 2000도5711 판결은 피고인이 경찰서에서 피해자와의 다툼 경위에 관한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 발언을 한 경우 공연성을 부정한 원심을 수긍하였고, 대법원 1990. 4. 27. 선고 89도1467 판결은 조합장인 피고인이 전 조합장인 피해자의 측근에게 조합운영의 협조를 구하기 위하여 피해자의 불신임사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을 한 경우 공연성을 부인하였다.

   이를 종합하면, 친밀하고 사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공적인 관계에 있어서도 조직 등의 업무와 관련하여 사실의 확인 또는 규명 과정에서 발언하게 된 것이거나, 상대방의 가해에 대하여 대응하는 과정에서 발언하게 된 경우 및 수사·소송 등 공적인 절차에서 그 당사자들 사이에 공방을 하던 중 발언하게 된 경우 등이라면 그 발언자의 전파가능성에 대한 인식과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를 인정하는 것은 신중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명예훼손죄가 사실의 확인 또는 규명, 가해에 대한 대응, 수사ㆍ소송 등의 정당한 행위를 막는 봉쇄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판례1> 마트의 운영자인 피고인이 마트에 아이스크림을 납품하는 업체 직원인 갑을 불러 ‘다른 업체에서는 마트에 입점하기 위하여 입점비를 준다고 하던데, 입점비를 얼마나 줬냐? 점장 을이 여러 군데 업체에서 입점비를 돈으로 받아 해먹었고, 지금 뒷조사 중이다.’라고 말하여 공연히 허위 사실을 적시하여 을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내용으로 기소된 사안에서, 피고인은 마트 영업을 시작하면서 을을 점장으로 고용하여 관리를 맡겼는데, 재고조사 후 일부 품목과 금액의 손실이 발견되자 그때부터 을을 의심하여 마트 관계자들을 상대로 을의 비리 여부를 확인하고 다니던 중 을이 납품업자들로부터 현금으로 입점비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갑을 불러 을에게 입점비를 얼마 주었느냐고 질문하였던 점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인은 을이 납품업체들로부터 입점비를 받아 개인적으로 착복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갑을 불러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면서 갑도 입점비를 을에게 주었는지 질문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말을 한 것으로 보이므로, 을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의도를 가지거나 그러한 결과가 발생할 것을 인식한 상태에서 위와 같은 말을 한 것이 아니어서 피고인에게 명예훼손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고, 한편 피고인이 아무도 없는 사무실로 갑을 불러 단둘이 이야기를 하였고, 갑에게 그와 같은 사실을 을에게 말하지 말고 혼자만 알고 있으라고 당부하였으며, 갑이 그 후 을에게는 이야기하였으나 을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한 정황은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에게 전파가능성에 대한 인식과 그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대법원 2018. 6. 15. 선고 2018도4200 판결).

<판례2> 망인이 사망하자 망인이 관리하던 재산의 정당한 권리자가 K인지 아니면 망인의 상속인인 피해자들인지 다툼이 발생하였다. 피고인은 E, F에게 각각 단 둘이 만나거나 통화하는 도중에 피해자들이 아니라 K이 정당한 권리자라는 취지를 설명하면서 망인과 K의 관계와 관련해서 G(망인의 처)와 H(망인의 아들)이 다투었다거나 G와 H이 망인을 돌보지 않았다는 말을 하였다(이 사건 공소사실이다). E, F은 피해자들 이외에는 피고인의 발언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 바가 없다. 피해자들은 E, F과 통화하면서 피고인이 위와 같이 발언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피고인은 E, F과 단 둘이 있는 가운데 발언하였고, 그 내용도 피해자들과 망인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매우 사적인 내용이다. E, F은 피고인이나 피해자들과 알지 못하던 사이였고, 다만 망인이 사망하자 망인이 관리하던 E, F에 대한 채권의 채권자가 K인지 아니면 망인을 상속한 피해자들인지에 관한 분쟁이 발생하여 그 과정에서 서로를 알게 되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E, F이 위와 같이 알게 된 피고인의 발언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알릴 이유가 없어 보인다.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명예훼손죄에서의 공연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대법원 2020. 1. 30. 선고 2016도21547 판결).

<판례3> 조합장으로 취임한 피고인이 조합의 원만한 운영을 위하여 피해자의 측근이며 피해자의 불신임을 적극 반대하였던 갑에게 조합운영에 대한 협조를 구하기 위하여 동인과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 이사회가 피해자를 불신임하게 된 사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여자관계의 소문이 돌고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이라면 그것은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1990. 4. 27. 선고 89도1467 판결).

  나) 구체적인 판단기준

    상대방 또는 피해자 사이의 관계나 지위, 대화를 하게 된 경위와 상황, 사실적시의 내용, 적시의 방법과 장소 등 행위 당시의 객관적 제반 사정에 관하여 심리한 다음, 그로부터 상대방이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할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를 검토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8. 2. 14. 선고 2007도8155 판결 등 참조). 발언 이후 실제 전파되었는지 여부는 전파가능성 유무를 판단하는 고려요소가 될 수 있으나, 발언 후 실제 전파 여부라는 우연한 사정은 공연성 인정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소극적 사정으로만 고려되어야 한다(대법원 1981. 10. 27. 선고 81도1023 판결, 대법원 1998. 9. 8. 선고 98도1949 판결, 대법원 2000. 2. 11. 선고 99도4579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전파가능성 법리에 따르더라도 위와 같은 객관적 기준에 따라 전파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고, 행위자도 발언 당시 공연성 여부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으며, 상대방의 전파의사만으로 전파가능성을 판단하거나 실제 전파되었다는 결과를 가지고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다.

    특히 발언 상대방발언자나 피해자의 배우자, 친척, 친구 등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에 있는 경우, 직무상 비밀유지의무 또는 이를 처리해야 할 공무원이나 이와 유사한 지위에 있는 경우에는 그러한 관계나 신분으로 인하여 비밀의 보장이 상당히 높은 정도로 기대되는 경우로서 공연성이 부정된다(대법원 1978. 4. 25. 선고 78도473 판결, 대법원 1984. 3. 27. 선고 84도86 판결, 대법원 1981. 10. 27. 선고 81도1023 판결, 대법원 2000. 2. 11. 선고 99도4579 판결, 대법원 2002. 11. 26. 선고 2002도4800 판결 등 참조).

    위와 같이 발언자와 상대방 및 피해자와 상대방이 특수한 관계에 있는 경우, 상대방이 직무상 특수한 지위 내지 신분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그 상대방에 대한 사실적시행위에 관하여 공연성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관계나 신분에도 불구하고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수 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존재하여야 한다(대법원 2020. 12. 30. 선고 2015도12933 판결).

<판례1> 피고인이 집에서 피고인의 처로부터 전날 피고인이 외박한 사실에 대하여 추궁당하자 이를 모면하기 위하여 처에게 피해자와 여관방에서 동침한 사실이 있다고 말한 사실만으로써는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인 공연성이 있다 할 수 없다(대법원 1984. 3. 27. 선고 84도86 판결).

<판례2> 피고인이 식당 내의 방안에서 공소외 인 한 사람에게 피해자 1과 피해자 2가 불륜관계에 있다는 내용의 말을 하였는데, 공소외인은 피해자 1과는 친척 간이라서 창피하여 아무 말 못하고 헤어진 후, 즉시 피해자 1을 찾아가 힐책하였다. 피고인이 식당 방안에서 공소외인 한 사람에게 대하여 한 이 사건 행위는 그 상대방인 공소외인과 피해자와의 신분관계로 보아 전파될 가능성이 없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원심이 피고인의 판시 소위가 공연성이 있는 것이라고 인정하려면 공소외인 한사람에 대한 사실의 유포가 이 사람을 통하여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는지의 여부를 좀더 자세히 심리 판단하였어야 할 것이다(대법원 1981. 10. 27. 선고 81도1023 판결).

<판례3> 이혼소송 계속중인 처가 남편의 친구에게 서신을 보내면서 남편의 명예를 훼손하는 문구가 기재된 서신을 동봉한 경우, 공연성이 결여되었다(대법원 2000. 2. 11. 선고 99도4579 판결).

<판례4> 피고인이 공소외 (갑)의 집앞에서 공소외 (을)피해자의 시어머니(병)이 있는 자리에서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말(“시커멓게 생긴 놈하고 매일같이 붙어 다닌다. 점방 마치면 여관에 가서 누워자고 아침에 들어온다”)을 한 사실이 인정된다면, 말의 전파가능성이 없어서 공연성이 결여되었다는 주장은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1983. 10. 11. 선고 83도2222 판결).

  다) 소결론

   대법원 판례는 그 동안 전파가능성 여부에 관한 구체적 판단기준을 발전시켜오면서 한편으로는 특정 소수에 대한 사실적시와 관련하여 다양한 제한 법리를 확립해 왔다. 그 핵심은 개별적인 소수에 대한 발언을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을 이유로 공연성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막연히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부족하고, 고도의 가능성 내지 개연성이 필요하며, 이에 대한 검사의 엄격한 증명을 요한다는 것이다.

 3) 명예를 해할 위험성의 발생과 공연성의 해석

   명예훼손죄 규정이 ‘명예를 훼손한’이라고 규정되어 있음에도 이를 침해범이 아니라 추상적 위험범으로 보는 것은 명예훼손이 갖는 행위반가치와 결과반가치의 특수성에 있다. 즉 명예훼손죄의 보호법익인 명예에 대한 침해가 객관적으로 확인될 수 없고 이를 증명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적시된 사실을 실제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상태에 놓인 것만으로도 명예가 훼손된 것으로 보아야 하고 이를 불능범이나 미수로 평가할 수 없다. 공연성에 관한 위와 같은 해석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의 측면을 말하는 것이고, 죄형법정주의에서 허용되는 해석이며, 그와 같은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의 필요성이 있다.

   추상적 위험범으로서 명예훼손죄는 개인의 명예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진위에 관계 없이 보호함을 목적으로 하고, 적시된 사실이 특정인의 사회적 평가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구체성을 띠어야 하나(대법원 1994. 10. 25. 선고 94도1770 판결, 대법원 2000. 2. 25. 선고 98도2188 판결 등 참조), 위와 같이 침해할 위험이 발생한 것으로 족하고 침해의 결과를 요구하지 않으므로, 다수의 사람에게 사실을 적시한 경우뿐만 아니라 소수의 사람에게 발언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초래한 경우에도 공연히 발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 형사법에서는 공연성을 성립요건으로 규정함으로써, 명예훼손죄의 공연성을 처벌의 가중요건으로 보는 독일 등과 차이가 있으므로, 해석 또한 우리의 형사법 체계에 맞도록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나아가 외국 입법례를 이유로 공연성 요건을 법문과 달리 지나치게 좁게 해석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위해 개인의 인격권을 등한시하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특히 인터넷과 각종 정보통신 기술 발달로 인해 개인에 대한 정보와 사생활이 쉽게 노출되고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이 상실되는 사례가 빈발하는 현실에서 개인의 사생활 비밀과 관련된 영역은 엄격히 보호되어야 하고,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이를 침범하는 것이 허용되어서는 아니 된다. 개인의 인격권, 사생활 보호와 표현의 자유는 모두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으로서 서로 긴장관계를 갖고 대립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영역 내에서 보호되어야 하는 것이지, 한 쪽을 보호하기 위하여 다른 쪽을 희생시킬 수 없다.

<판례1> 명예훼손죄는 추상적 위험범으로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적시된 사실을 실제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 놓인 것으로도 명예가 훼손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발언 상대방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적시하였더라도 공연성 즉 전파될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 없다(대법원 1993. 3. 23. 선고 92도455 판결 등 참조). (대법원 2020. 12. 30. 선고 2015도15619 판결)

<판례2>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사실의 적시가 있어야 하고 적시된 사실은 이로써 특정인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가 침해될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구체성을 띠어야 한다. “애꾸눈, 병신”이라는 발언 내용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모욕하기 위하여 경멸적인 언사를 사용하면서 욕설을 한 것에 지나지 아니하고, 피해자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저하시키기에 충분한 구체적 사실을 적시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대법원 1994. 10. 25. 선고 94도1770 판결).

 4) 의사소통 방법과 구조의 변화에 따른 공연성의 의미와 내용

  공연성의 의미는 고정된 것이 아니므로 시대 변화나 정보통신망 발달에 따라 그 개념과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인터넷 등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의 신분적·사회적 지위나 활동 등을 둘러싸고 근거가 희박한 의혹을 제기하거나 소문을 적시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비록 적시된 사실이 허위사실이 아닌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 사실에 기초하여 왜곡된 의혹 제기·편파적 의견 또는 부당한 평가를 추가로 적시하는 방법으로 실제로는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와 다를 바 없거나 적어도 다른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심대하게 훼손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더욱이 명예와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전통적 가치관의 영향으로, 인터넷 등 정보통신망에서의 명예훼손, 비방 글들로 인하여 사회적 피해가 이미 심각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경우에도 위와 같은 현재의 명예훼손의 양상과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이러한 명예훼손적인 표현을 규제함으로써 인격권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은 매우 크다[헌법재판소 2016. 2. 25. 선고 2013헌바105, 2015헌바234(병합) 결정 등 참조].

  전파가능성 법리는 정보통신망 등 다양한 유형의 명예훼손 처벌규정에서의 공연성 개념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술 등의 발달과 보편화로 SNS, 이메일, 포털사이트 등 정보통신망을 통해 대부분의 의사표현이나 의사전 달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에 따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명예훼손도 급격히 증가해 가고 있다. 이러한 정보통신망과 정보유통과정은 비대면성, 접근성, 익명성 및 연결성 등을 그 본질적 속성으로 하고 있어서, 정보의 무한 저장, 재생산 및 전달이 용이하여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명예훼손은 ‘행위 상대방’ 범위와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명예훼손 내용을 소수에게만 보냈음에도 행위 자체로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형성하는 경우가 다수 발생하게 된다. 특히 정보통신망에 의한 명예훼손의 경우 행위자가 적시한 정보에 대한 통제가능성을 쉽게 상실하게 되고, 빠른 전파성으로 인하여 피해자의 명예훼손의 침해 정도와 범위가 광범위하게 되어 표현에 대한 반론과 토론을 통한 자정작용이 사실상 무의미한 경우도 적지 아니하다.

  따라서 현재의 명예훼손의 방식과 양상을 고려할 때 공연성을 해석함에 있어서도 위와 같은 정보통신망의 특성이 고려되어야 한다. 대법원 판례도 위와 같은 정보통신망의 특성을 고려하여 이를 이용한 명예훼손의 경우 공연성 판단에서 전파가능성 유무를 그 기준으로 적용해 왔다. 즉 대법원 2009. 11. 12. 선고 2009도9396 판결은 피고인이 직장 상사에게 직장 동료인 피해자에 관한 허위내용이 담긴 이메일을 보낸 사안에서 피고인이 이메일을 보낸 경위와 내용 등에 비추어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공연성을 인정한 원심을 수긍하였고, 대법원 2019. 7. 5.자 2019도6916 결정은 피고인이 오피스텔 관리인 후보로 출마한 피해자에 대한 비위사실을 같은 관리인 후보로 출마한 후보자의 지지자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사안에서 분쟁 상황이나 그 상대방의 지 위를 고려해 볼 때 상대방이 그 내용을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알릴 수 있다는 점이 충분히 예상된다는 이유로 공연성을 인정한 원심을 수긍하였다. 또한 대법원 2019. 2. 22.자 2019도790 결정은 피고인이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피해자에 대한 허위사실을 적시한 사안에서 그 상대방이 페이스북 등에서 상당한 수의 팔로워가 있는 점과 적시 내용 등에 비추어 공연성을 인정한 원심을 수긍하였다. 반면 대법원 2018. 3. 29. 선고 2017도20409 판결은 피고인이 지인에게 피해자에 대한 허위내용이 담긴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사안에서 대화 경위와 이후 사정 등에 비추어 사적 대화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공연성을 부정한 원심을 수긍하였다.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명예훼손 행위에 대하여, 상대방이 직접 인식하여야 한다거나, 특정된 소수의 상대방으로는 공연성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법리를 내세운다면 해결기준으로 기능하기 어렵게 된다. 오히려 특정 소수에게 전달한 경우에도 그로부터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 대한 전파가능성 여부를 가려 개인의 사회적 평가가 침해될 일반적 위험성이 발생하였는지를 검토하는 것이 실질적인 공연성 판단에 부합되고, 공연성의 범 위를 제한하는 구체적인 기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공연성의 의미는 형법과 정보통신 망법 등의 특별법에서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2. 사실의 적시

 1) ‘사실의 적시’의 의미와 판단기준

  가)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사실의 적시가 있어야 하고 적시된 사실은 이로써 특정인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가 침해될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구체성을 띠어야 한다(대법원 2000. 2. 25. 선고 98도2188 판결).

   나)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사실의 적시가 있어야 하고 적시된 사실은 특정인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가 침해될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구체성을 띠어야 한다. 사실의 적시란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의견표현에 대치되는 개념으로서 시간과 공간적으로 구체적인 과거 또는 현재의 사실관계에 관한 보고나 진술을 뜻하며, 표현내용이 증거에 의한 증명이 가능한 것을 말한다. 판단할 진술이 사실인지 아니면 의견인지를 구별할 때에는 언어의 통상적 의미와 용법, 증명가능성, 문제 된 말이 사용된 문맥, 표현이 이루어진 사회적 상황 등 전체적 정황을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대법원 2022. 5. 13.선고 2020도15642 판결).

 2) ‘양성애자’ 발언 사실의 적시 인정 사례

   피고인은 B 학부모연합 대표로서, 2018. 1. 22. 12:00경 D 방송국 사옥 앞에서 D에서 방영하는 ‘E’라는 프로그램의 방영 중단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석하였다. 피해자 F은 같은 무렵 D 주차장 입구 쪽에서 위 프로그램의 방영 중단에 대한 반대 및 위 프로그램 고정출연자인 G의 복귀를 요구하는 집회에 참석하였다가 마치고 피고인 일행이 있는 집회장을 지나가게 되었다.

   피고인은 집회 중 자신의 순서가 되자 무대 차량 단상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다가 피해자가 피고인 일행의 집회 현장으로 오는 것을 보고 집회 참가자 20여 명이 듣고 있는 가운데 피해자를 가리키며 “저거 사진 찍으세요 쟤가 누구냐 하면요 그 태극기에다 불태운 놈입니다. 년놈 입니다. 저게 태극기에 불태우고 여자 남자 양성애자 여자고, 우린 너의 정체를 다 알고 있어“라고 말하였다.

   피고인이 피해자가 태극기를 불태운 사람이라는 사실 및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공연히 적시한 사실이 인정되고, 위 각 사실은 사회통념상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는 사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피고인과 변호인은 양성애자라는 사실은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는 사실이 아니라는 취지로 주장하나, 양성애에 대한 우리 사회 구성의 현재의 평균적인 통념에 비추어 볼 때, 그와 같은 통념이 바람직한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그와 같은 사실은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는 사실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3) 사실의 적시 부정 사례

  가) 온라인에서 ‘대머리’ 표현은 구체적 사실 적시 아냐

   피고인이 ‘리니지’ 게임상에서 닉네임 ‘촉’을 사용하는 피해자와 감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으로 그 게임에 접속하여 게임을 하는 불특정 다수인이 볼 수 있는 채팅창에 “촉, 뻐꺼, 대머리”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거짓의 사실’은 개인의 주관적 감정이나 정서를 떠나서 객관적으로 볼 때 상대방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저하시키는 내용에 해당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어야 함은 물론, 그 표현을 하게 된 상황과 전후 맥락에 비추어 그 표현 자체로 ‘구체적 사실’을 드러낸 것이라고 이해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 표현 중 문제가 되는 ‘뻐꺼’나 ‘대머리’라는 표현은, 그 표현을 하게 된 경위와 의도, 피고인과 피해자는 직접 대면하거나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서라도 상대방의 모습을 본 적이 없이 단지 인터넷이라는 사이버 공간의 게임상대방으로서 닉네임으로만 접촉하였을 뿐인 점 등 앞서 본 여러 사정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이 피해자에 대한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여 모욕을 주기 위하여 사용한 것일 수는 있을지언정 객관적으로 그 표현 자체가 상대방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저하시키는 것이라거나 그에 충분한 구체적 사실을 드러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대법원 2011. 10. 27. 선고 2011도9033 판결).

  나) ‘이혼하였다는 사실’은 사회적 평가 저해하지 않아

   동장인 피고인이 동 주민자치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어제 열린 당산제(마을제사) 행사에 남편과 이혼한 갑도 참석을 하여, 이에 대해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 사이에 안 좋게 평가하는 말이 많았다.’는 취지로 말하고, 동 주민들과 함께한 저녁식사 모임에서 ‘갑은 이혼했다는 사람이 왜 당산제에 왔는지 모르겠다.’는 취지로 말하였다.

   피고인이 위 발언을 통해 갑에 관하여 적시하고 있는 사실은 ‘갑이 이혼하였다.’는 사실과 ‘갑이 당산제에 참여하였다.’는 것으로, 이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평가가 점차 사라지고 있음을 감안하면 피고인이 갑의 이혼 경위나 사유, 혼인관계 파탄의 책임 유무를 언급하지 않고 이혼 사실 자체만을 언급한 것은 갑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떨어뜨린다고 볼 수 없고, 또한 ‘갑이 당산제에 참여하였다.’는 것도 그 자체로는 가치중립적인 사실로서 갑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침해한다고 보기 어려운 점, 피고인은 주민 사이에 ‘이혼한 사람이 당산제에 참여하면 부정을 탄다.’는 인식이 있음을 전제로 하여 발언을 한 것으로서, 발언 배경과 내용 등에 비추어 이는 갑에 관한 과거의 구체적인 사실을 진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산제 참석과 관련하여 갑이 이혼한 사람이기 때문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언급한 것으로서 갑의 당산제 참석에 대한 부정적인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표현하고 있을 뿐이라고 보아야 하는 점을 종합하면, 피고인의 위 발언은 갑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침해하는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에 해당하지 않고 갑의 당산제 참여에 관한 의견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와 달리 보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에 명예훼손죄에서 사실의 적시와 의견표현의 구별에 관한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대법원 2022. 5. 13.선고 2020도15642 판결).

 

3. 인식(고의)

  1) 전파가능성 인식

   전파가능성을 이유로 명예훼손죄의 공연성을 인정하는 경우에는 적어도 범죄구성요건의 주관적 요소로서 미필적 고의가 필요하므로 전파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있음은 물론 나아가 그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어야 하고, 그 행위자가 전파가능성을 용인하고 있었는지의 여부는 외부에 나타난 행위의 형태와 행위의 상황 등 구체적인 사정을 기초로 하여 일반인이라면 그 전파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고려하면서 행위자의 입장에서 그 심리상태를 추인하여야 한다(대법원 2004. 4. 9. 선고 2004도340 판결).

  2) 명예훼손한다는 고의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이든,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든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주관적 요소로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하는 고의를 가지고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데 충분한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는 행위를 할 것이 요구되는바, 명예훼손 사실을 발설한 것이 정말이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실을 발설하게 된 것이라면, 그 발설내용과 동기에 비추어 명예훼손의 범의를 인정할 수 없다(대법원 2010. 10. 28. 선고 2010도2877 판결).

<판례>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

A가 입주자대표 등이 모인 삼성아파트 자치회의에서 피고인이 자신에게 허위의 사실을 말하였는데, 피고인에게 그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는지 그리고 그에 관한 증거가 있는지 해명을 요구하였고, 피고인은 이에 대한 답을 하는 차원에서 발언(E은 대표회장으로 재직 당시 회의록이나 지출결의서는 관리사무소에 보관하지 않고 집에 보관하고 있으며 어떠한 돈인지는 모르지만 170만 원을 E을 비롯한 동대표 6-7명과 나누어 써버렸다)을 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피고인에게 이 부분 공소사실과 관련하여 명예훼손의 고의가 있음을 인정할 수 없다.

  3)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의 고의

   형법 제307조 제2항 소정의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기 위하여서는 사실의 적시를 공연히 하여야 하고 그 적시하는 사실이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것으로서 허위이어야 하며 범인이 그와 같은 사실이 허위라고 인식을 하여야 한다(대법원 1988. 9. 27. 선고 88도1008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