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죄 공연성, 전파가능성 제한 법리

1. 사건 개요 및 쟁점

가. 공소사실

피고인이 피해자 공소외 1 집 뒷길에서 피고인의 남편 공소외 2 및 공소외 3이 듣는 가운데 피해자에게 ‘저것이 징역 살다온 전과자다’ 등으로 큰소리로 말하여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것이다. 피고인은 공연성이 없다고 다투었으나, 원심은 피고인이 큰 소리로 공소사실과 같이 말하였고 피고인의 발언이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공연성을 인정하여 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피고인의 상고이유는 공소외 2가 피해자의 전과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고 피고인의 남편이며, 공소외 3이 피해자의 친척이므로 피고인의 발언에 전파가능성이 없어 공연성이 없다는 것이다.

나. 쟁점

이 부분 쟁점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 대하여 전파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도 명예훼손죄의 공연성을 인정하는 확립된 대법원 판례의 유지 여부이다. 나아가 판례를 유지하더라도 이에 관한 기존의 대법원 판례를 재검토하고, 공연성의 판단기준이나 적용 범위를 합리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법리를 같이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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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명예훼손죄 규정 및 처벌 필요성

1) 명예훼손죄 규정명예란 각 사람이 인간의 존엄과 사회적 생활의 기초 위에서 누려야 할 인격적 가치를 말하고, 이는 인간의 품위를 유지시켜 주고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명예에 관한 죄의 보호법익으로서 명예란 사람의 인격에 관해 타인 들에게서 주어지는 사회적 평가를 말하는데(대법원 1988. 9. 27. 선고 88도1008 판결 등 참조), 이러한 인격적 가치로서의 명예를 형사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형법 외에도 다양한 특별법에서 이에 대한 침해를 규율하되, 각 규정은 명예훼손의 행위 태양으로서 다음과 같이 공연성을 요구하고 있다.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이라 한다) 제70조 제1 항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공직선거법 제251조는 ‘당선되거나 되게 할 목적으로 또는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연설 · 선전문서 등 기타의 방법으로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후보자를 비방한 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형법 제307조 제2항은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형법 제308조는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자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여 공연성을 구성요건으로 한다. 반면 형법 제309조는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신문, 잡지 또는 라디오 기타 출판물에 의하여 제307조 제1항, 제2항의 죄를 범한 자’라고 규정하여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의 경우에는 사실적시 행위에 공연성이 필요하지 아니하다.

정보통신망법은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개를 목적으로 제공된 정보로 명예훼손이 된 경우 해당 정보를 처리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그 정보의 삭제 등을 요청할 수 있고,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삭제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하였으며(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 제1항, 제2항), 불법정보 유통을 금지하는 규정을 신설하면서 ‘비방 목적으로 공공연하게 사실 또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훼손하는 내용의 정보’의 유통을 금지하고(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7 제1항 제2호), 그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제한 등 명령을 불이행할 경우 형사처벌하도록 하였다(정보통신망법 제73조 제5호). 공직선거법 규정에 위반된 정보가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게시되거나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전송되는 경우에도 해당 정보의 삭제 등의 조치가 가능하다(공직선거법 제82조의4 제3항, 제4항).

2) 명예훼손 행위에 대한 처벌의 필요성사실적시 명예훼손죄(형법 제307조 제1항)에 관한 폐지 논의도 있으나,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명예를 훼손하는 방법이나 명예훼손이 이루어지는 공간도 다양해지고 새로워지면서 명예훼손죄는 이제 형법상의 범죄에 머물지 않고 인터넷을 이용한 경우 정보통신망법의 적용을 받으며, 명예훼손 행위의 목적, 수단 및 방법에 따라 특별법을 통해 그에 대한 처벌범위와 규제가 오히려 더 확대되고 있다. 사회적으로 알려진 사실이 진실이든 진실이 아니든 보호받아야 할 부분이 존재하고, 특히 인격권의 핵심을 이루는 개인 사생활의 본질적 측면에 관한 공개는 그 자체로 개인의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그러한 명예에 대한 침해가 대량으로 발생하고, 건전한 인터넷 문화의 미성숙으로 사생활 폭로, 왜곡된 의혹 제기, 혐오와 증오적 표현 및 편파적 의견으로 인한 개인의 인격권이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로 심각한 침해가 이루어져 자살 등과 같은 부작용이 양산되고 있다. 현재 형벌을 대체할 만한 적절하고 효과적인 수단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점에서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것이든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것이든 명예훼손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의 필요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3. 명예훼손죄에서 공연성의 의의 및 대법원 판례

가. 공연성의 의의

명예훼손죄의 관련 규정들은 명예에 대한 침해가 ‘공연히’ 또는 ‘공공연하게’ 이루어질 것을 요구하는데,공연히’ 또는 ‘공공연하게’는 사전적으로 ‘세상에서 다 알 만큼 떳 떳하게’, ‘숨김이나 거리낌이 없이 그대로 드러나게‘라는 뜻이다. 공연성을 행위 태양으로 요구하는 것은 사회에 유포되어 사회적으로 유해한 명예훼손 행위만을 처벌함으로써 개인의 표현의 자유가 지나치게 제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대법원 판례는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으로서 공연성에 관하여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밝혀 왔고(대법원 1992. 5. 26. 선고 92도445 판결, 대법원 1996. 7. 12. 선고 96도1007 판결, 대법원 2008. 2. 14. 선고 2007도8155 판결 등 참조), 이는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기도 하다.

나. 공연성에 관한 대법원 판례

대법원은 명예훼손죄의 공연성에 관하여 개별적으로 소수의 사람에게 사실을 적시하 였더라도 그 상대방이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적시된 사실을 전파할 가능성이 있는 때에는 공연성이 인정된다고 일관되게 판시하여, 이른바 전파가능성 이론은 공연성에 관한 확립된 법리로 정착되었다.

즉 대법원 1968. 12. 24. 선고 68도1569 판결에서 ‘비밀이 잘 보장되어 외부에 전파될 염려가 없는 경우가 아니면 비록 개별적으로 한 사람에 대하여 사실을 유포하였더라도 연속하여 수인에게 사실을 유포하여 그 유포한 사실이 외부에 전파될 가능성이 있는 이상 공연성이 있다.’고 최초로 판시한 후 대법원 1981. 10. 27. 선고 81도1023 판결에서 ‘비록 개별적으로 한 사람에 대하여 사실을 유포하였다고 하여도 이로부터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면 공연성의 요건을 충족하는 것이나, 이와 반대의 경우라면 특정한 한 사람에 대한 사실의 유포는 공연성을 결여한 것이다.’고 판시하였고, 최근의 대법원 2018. 6. 15. 선고 2018도4200 판결에서도 위 법리가 유지되었다.

이러한 법리는 정보통신망법상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명예훼손이나 공직선거법상 후 보자비방죄 등의 공연성 판단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대법원 1996. 7. 12. 선고 96도1007 판결, 대법원 2008. 2. 14. 선고 2007도8155 판결 등 참조), 적시한 사실이 허위인지 여부나 특별법상 명예훼손 행위인지 여부에 관계없이 명예훼손 범죄의 공연성에 관한 대법원 판례의 기본적 법리로 적용되어 왔다.

라. 대법원 판례의 법리와 타당성 공연성에 관한 전파가능성 법리는 대법원이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시켜 온 것으로서, 현재에도 여전히 법리적으로나 현실적인 측면에 비추어 타당하므로 유지되어야 한다.

아래에서는 대법원 판례가 전개해 온 전파가능성 법리의 구체적 내용과 기준을 살펴보고, 그에 따라 대법원 판례가 유지되어야 하는 근거를 밝히기로 한다.

전파가능성 법리를 비판하는 견해는 전파가능성 유무를 판단할 객관적 기준이 존재하지 아니하여 구체적 적용에 자의가 개입될 수 있고, 행위자에게 결과만으로 과중한 책임을 인정하여 책임주의에 반한다고 지적한다. 비판의 내용과 논거 자체는 타당하지 않지만, 처벌범위의 확대를 경계하는 취지에는 공감할 부분이 있다.

대법원 판례와 재판 실무는 이러한 문제 인식을 토대로 전파가능성 법리를 제한 없이 적용할 경우 공연성 요건이 무의미하게 되고 처벌이 확대되게 되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전파가능성의 구체적·객관적인 적용 기준을 세우고, 피고인의 범의를 엄격히 보거나 적시의 상대방과 피고인 또는 피해자의 관계에 따라 전파가능성을 부정하는 등 판단기준을 사례별로 유형화하면서 전파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필요함을 전제로 전파가능성 법리를 적용함으로써 공연성을 엄격하게 인정하여 왔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4. 대법원 판례법리와 타당성

가. 대법원 판례의 법리

1) 전파가능성 및 인식 등에 관한 증명

가) 검사의 엄격한 증명책임

공연성은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으로서, 특정 소수에 대한 사실적시의 경우 공연성 이 부정되는 유력한 사정이 될 수 있으므로, 전파될 가능성에 관하여는 검사의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다(대법원 1997. 2. 14. 선고 96도2234 판결, 대법원 2006. 4. 14. 선고 2004도207 판결 등 참조). 나아가 대법원은 ‘특정의 개인이나 소수인에게 개인적 또는 사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과 같은 행위는 공연하다고 할 수 없고, 다만 특정의 개인 또는 소수인이라고 하더라도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 또는 유포될 개연성이 있는 경우라면 공연하다고 할 수 있다.’고 판시하여 전파될 가능성에 대한 증명의 정도로 단순히 ‘가능성’이 아닌 ‘개연성’을 요구하였다(대법원 1982. 3. 23. 선고 81도2491 판결, 대법원 1989. 7. 11. 선고 89도886 판결 등 참조).

나) 전파가능성에 관한 인식과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

대법원은 ‘전파가능성을 이유로 명예훼손죄의 공연성을 인정하는 경우에는 적어도 범죄구성요건의 주관적 요소로서 미필적 고의가 필요하므로 전파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있음은 물론 나아가 그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어야 하고, 행위자가 전파가능성을 용인하고 있었는지 여부는 외부에 나타난 행위의 형태와 상황 등 구체적인 사정을 기초로 일반인이라면 그 전파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고려하면서 행위자의 입장에서 그 심리상태를 추인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여(대법원 2004. 4. 9. 선고 2004도340 판결 등 참조), 행위자의 고의를 인정함에 있어 신중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에 따라 대법원 2018. 6. 15. 선고 2018도4200 판결은 피고인이 불미스러운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고자 하는 질문 중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을 한 사안에서 명예훼손의 고의를 부정하였고, 대법원 2020. 1. 30. 선고 2016도21547 판결은 적시의 상대방이 피고인이나 피해자들과 별다른 친분관계가 없더라도 발언의 경위와 내용에 비추어 피고인에게 전파가능성에 대한 인식과 위험을 용인하는 의사가 없었다고 보기도 하였다. 한편 대법원 2001. 4. 10. 선고 2000도5711 판결은 피고인이 경찰서에서 피해자와의 다툼 경위에 관한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 발언을 한 경우 공연성을 부정한 원심을 수긍하였고, 대법원 1990. 4. 27. 선고 89도1467 판결은 조합장인 피고인이 전 조합장인 피해자의 측근에게 조합운영의 협조를 구하기 위하여 피해자의 불신임사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을 한 경우 공연성을 부인하였다. 이를 종합하면, 친밀하고 사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공적인 관계에 있어서도 조직 등의 업무와 관련하여 사실의 확인 또는 규명 과정에서 발언하게 된 것이거나, 상대방의 가해에 대하여 대응하는 과정에서 발언하게 된 경우 및 수사·소송 등 공적인 절차에서 그 당사자들 사이에 공방을 하던 중 발언하게 된 경우 등이라면 그 발언자의 전파 가능성에 대한 인식과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를 인정하는 것은 신중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명예훼손죄가 사실의 확인 또는 규명, 가해에 대한 대응, 수사 · 소송 등의 정당한 행위를 막는 봉쇄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2) 구체적인 판단기준

공연성의 존부발언자와 상대방 또는 피해자 사이의 관계나 지위, 대화를 하게 된 경위와 상황, 사실적시의 내용, 적시의 방법과 장소 등 행위 당시의 객관적 제반 사정에 관하여 심리한 다음, 그로부터 상대방이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할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를 검토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8. 2. 14. 선고 2007도8155 판결 등 참조). 발언 이후 실제 전파되었는지 여부는 전파가능성 유무를 판단하는 고려요소가 될 수 있으나, 발언 후 실제 전파 여부라는 우연한 사정은 공연성 인정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소극적 사정으로만 고려되어야 한다(대법원 1981. 10. 27. 선고 81도1023 판결, 대법원 1998. 9. 8. 선고 98도1949 판결, 대법원 2000. 2. 11. 선고 99도4579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전파가능성 법리에 따르더라도 위와 같은 객관적 기준에 따라 전파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고, 행위자도 발언 당시 공연성 여부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으며, 상대방의 전파의 사만으로 전파가능성을 판단하거나 실제 전파되었다는 결과를 가지고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다.

특히 발언 상대방이 발언자나 피해자의 배우자, 친척, 친구 등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에 있는 경우, 직무상 비밀유지의무 또는 이를 처리해야 할 공무원이나 이와 유사한 지위에 있는 경우에는 그러한 관계나 신분으로 인하여 비밀의 보장이 상당히 높은 정도로 기대되는 경우로서 공연성이 부정된다(대법원 1978. 4. 25. 선고 78도473 판결, 대법원 1984. 3. 27. 선고 84도86 판결, 대법원 1981. 10. 27. 선고 81도1023 판결, 대법원 2000. 2. 11. 선고 99도4579 판결, 대법원 2002. 11. 26. 선고 2002도4800 판결 등 참조).

위와 같이 발언자와 상대방 및 피해자와 상대방이 특수한 관계에 있는 경우, 상대방이 직무상 특수한 지위 내지 신분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그 상대방에 대한 사실적시 행위에 관하여 공연성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관계나 신분에도 불구하고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수 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존재하여야 한다.

3) 소결론

대법원 판례는 그 동안 전파가능성 여부에 관한 구체적 판단기준을 발전시켜오면서 한편으로는 특정 소수에 대한 사실적시와 관련하여 다양한 제한 법리를 확립해 왔다. 그 핵심은 개별적인 소수에 대한 발언을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을 이유로 공연성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막연히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부족하고, 고도의 가능성 내지 개연성이 필요하며, 이에 대한 검사의 엄격한 증명을 요한다는 것이다.

나. 명예를 해할 위험성의 발생과 공연성의 해석

명예훼손죄 규정이 ‘명예를 훼손한’이라고 규정되어 있음에도 이를 침해범이 아니라 추상적 위험범으로 보는 것은 명예훼손이 갖는 행위 반가치와 결과반가치의 특수성에 있다. 즉 명예훼손죄의 보호법익인 명예에 대한 침해가 객관적으로 확인될 수 없고 이를 증명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적시된 사실을 실제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상태에 놓인 것만으로도 명예가 훼손된 것으로 보아야 하고 이를 불능범이나 미수로 평가할 수 없다. 공연성에 관한 위와 같은 해석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의 측면을 말하는 것이고, 죄형법정주의에서 허용되는 해석이며, 그와 같은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의 필요성이 있다.

추상적 위험범으로서 명예훼손죄는 개인의 명예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진위에 관계 없이 보호함을 목적으로 하고, 적시된 사실이 특정인의 사회적 평가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구체성을 띠어야 하나(대법원 1994. 10. 25. 선고 94도1770 판결, 대법원 2000. 2. 25. 선고 98도2188 판결 등 참조), 위와 같이 침해할 위험이 발생한 것으로 족하고 침해의 결과를 요구하지 않으므로, 다수의 사람에게 사실을 적시한 경우뿐만 아니라 소수의 사람에게 발언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초래한 경우에도 공연히 발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 형사법에서는 공연성을 성립요건으로 규정함으로써, 명예훼손죄의 공연성을 처벌의 가중요건으로 보는 독일 등과 차이가 있으므로, 해석 또한 우리의 형사법 체계에 맞도록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나아가 외국 입법례를 이유로 공연성 요건을 법문과 달리 지나치게 좁게 해석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위해 개인의 인격권을 등한시하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특히 인터넷과 각종 정보통신 기술 발달로 인해 개인에 대한 정보와 사생활이 쉽게 노출되고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이 상실되는 사례가 빈발하는 현실에서 개인의 사생활 비밀과 관련된 영역은 엄격히 보호되어야 하고,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이를 침범하는 것이 허용되어서는 아니 된다. 개인의 인격권, 사생활 보호와 표현의 자유는 모두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으로서 서로 긴장관계를 갖고 대립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영역 내에서 보호되어야 하는 것이지, 한 쪽을 보호하기 위하여 다른 쪽을 희생시킬 수 없다.

다. 의사소통 방법과 구조의 변화에 따른 공연성의 의미와 내용

공연성의 의미는 고정된 것이 아니므로 시대 변화나 정보통신망 발달에 따라 그 개념과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인터넷 등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의 신분적·사회적 지위나 활동 등을 둘러싸고 근거가 희박한 의혹을 제기하거나 소문을 적시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비록 적시된 사실이 허위사실이 아닌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 사실에 기초하여 왜곡된 의혹 제기 · 편파적 의견 또는 부당한 평가를 추가로 적시하는 방법으로 실제로는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와 다를 바 없거나 적어도 다른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심대하게 훼손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더욱이 명예와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전통적 가치관의 영향으로, 인터넷 등 정보통신망에서의 명예훼손, 비방 글들로 인하여 사회적 피해가 이미 심각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경우에도 위와 같은 현재의 명예훼손의 양상과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이러한 명예훼손적인 표현을 규제함으로써 인격권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은 매우 크다[헌법재판소 2016. 2. 25. 선고 2013헌바105, 2015헌바234(병합) 결정 등 참조]. 전파가능성 법리는 정보통신망 등 다양한 유형의 명예훼손 처벌규정에서의 공연성 개념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술 등의 발달과 보편화로 SNS, 이메일, 포털사이트 등 정보통신망을 통해 대부분의 의사표현이나 의사전달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에 따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명예훼손도 급격히 증가해 가고 있다. 이러한 정보통신망과 정보유통과정은 비대면성, 접근성, 익명성 및 연결성 등을 그 본질적 속성으로 하고 있어서, 정보의 무한 저장, 재생산 및 전달이 용이하여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명예훼손은 ‘행위 상대방’ 범위와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명예훼손 내용을 소수에게만 보냈음에도 행위 자체로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형성하는 경우가 다수 발생하게 된다. 특히 정보통신망에 의한 명예훼손의 경우 행위자가 적시한 정보에 대한 통제가능성을 쉽게 상실하게 되고, 빠른 전파성으로 인하여 피해자의 명예훼손의 침해 정도와 범위가 광범위하게 되어 표현에 대한 반론과 토론을 통한 자정작용이 사실상 무의미한 경우도 적지 아니하다.

따라서 현재의 명예훼손의 방식과 양상을 고려할 때 공연성을 해석함에 있어서도 위와 같은 정보통신망의 특성이 고려되어야 한다. 대법원 판례도 위와 같은 정보통신망의 특성을 고려하여 이를 이용한 명예훼손의 경우 공연성 판단에서 전파가능성 유무를 그 기준으로 적용해 왔다. 즉 대법원 2009. 11. 12. 선고 2009도9396 판결은 피고인이 직장 상사에게 직장 동료인 피해자에 관한 허위내용이 담긴 이메일을 보낸 사안에서 피고인이 이메일을 보낸 경위와 내용 등에 비추어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공연성을 인정한 원심을 수긍하였고, 대법원 2019. 7. 5.자 2019도6916 결정은 피고인이 오피스텔 관리인 후보로 출마한 피해자에 대한 비위사실을 같은 관리인 후보로 출마한 후보자의 지지자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사안에서 분쟁 상황이나 그 상대방의 지위를 고려해 볼 때 상대방이 그 내용을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알릴 수 있다는 점이 충분히 예상된다는 이유로 공연성을 인정한 원심을 수긍하였다. 또한 대법원 2019. 2. 22.자 2019도790 결정은 피고인이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피해자에 대한 허위사실을 적시한 사안에서 그 상대방이 페이스북 등에서 상당한 수의 팔로워가 있는 점과 적시. 내용 등에 비추어 공연성을 인정한 원심을 수긍하였다. 반면 대법원 2018. 3. 29. 선고 2017도20409 판결은 피고인이 지인에게 피해자에 대한 허위내용이 담긴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사안에서 대화 경위와 이후 사정 등에 비추어 사적 대화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공연성을 부정한 원심을 수긍하였다.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명예훼손 행위에 대하여, 상대방이 직접 인식하여야 한다거나, 특정된 소수의 상대방으로는 공연성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법리를 내세운다면 해결기준으로 기능하기 어렵게 된다. 오히려 특정 소수에게 전달한 경우에도 그로부터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 대한 전파가능성 여부를 가려 개인의 사회적 평가가 침해될 일반적 위험성이 발생하였는지를 검토하는 것이 실질적인 공연성 판단에 부합되고, 공연성의 범위를 제한하는 구체적인 기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공연성의 의미는 형법과 정보통신망법 등의 특별법에서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5. 형법 제310조의 위법성조각사유에 대한 새로운 판단기준

가. 발언 내용에 따른 위법성조각의 확대 필요성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명예훼손죄의 공연성 판단에 있어 판례상 인정되어 온 전파가능성 법리는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행위 태양에 따른 공연성 판단기준과 별도로 ‘발언 내용’에 따른 처벌 여부는 보다 엄격한 기준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독일 등 외국의 입법례와 달리 우리 형법은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명예훼손죄로 처벌하고 있는데, 타인에 대한 공정한 비판마저 처벌함으로써 건전한 여론 형성이나 민주주의의 균형 잡힌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어서는 아니 된다. 유엔인권위원회도 당사국들에 대하여 명예훼손의 비범죄화 내지 제한적 적용을 권고한 바 있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와의 조화를 통한 우리 사회의 건전한 자정작용을 위해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공정한 비판에 해당할 경우 형사처벌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나. 형법 제310조의 위법성조각사유 인정 범위

형법 제310조는 ‘제307조 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명예훼손죄의 특수한 위법성조각사유를 규정한 것으로 위와 같은 개인의 명예보호와 표현의 자유를 조화시키려는데 목적이 있다. 진실성의 증명과 공공의 이익이라는 위법성의 조각 요건을 엄격하게, 요구하면 형사제재의 범위는 넓어지고 언론의 자유는 위축된다. 가치 있는 공적인 사안이나 국민이 알아야 할 사안(알 권리)에 대하여 자유로운 비판이나 토론을 하지 못하게 형사처벌로 규율한다면 언론의 자유는 축소되고, 비교형량의 비중은 명예보호쪽에 치우치게 된다(헌법재판소 1999. 6. 24. 선고 97헌마265 결정 등 참조).

대법원은 위와 같은 취지를 고려하여 형법 제310조를 점진적으로 넓게 인정하여 왔다. 형법 제310조의 문언은 ‘진실한 사실’을 표명한 경우에 한하여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진실한 사실이 아니거나 진실한 사실이라는 증명이 없더라도 행위자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까지 포함한다(대법원 1962. 5. 17. 선고 4294형상12 판결, 대법원 1988. 10. 11. 선고 85다카29 판결 등 참조). 진실한 사실이란 그 내용 전체의 취지를 살펴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사실이라는 의미로서 세부에 있어 진실과 약간 차이가 나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더라도 무방하다. 또한 형법 제310조의 문언상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 한하여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법문상 요건을 완화하여 널리 국가 · 사회 기타 일반 다수인의 이익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도 포함되며, 행위자의 주요한 동기 내지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부수적으로 다른 사익적 목적이나 동기가 내포되어 있더라도 형법 제310조의 적용을 배제할 수 없다(대법원 1998. 10. 9. 선고 97도158 판결, 대법원 2002. 9. 24. 선고 2002도3570 판결 등 참조).

다. ‘공공의 이익’에 관한 새로운 판단기준

독일 형법 제193조는 “학문적, 예술적, 영업적 능력에 대한 비판, 권리의 행사나 방어 또는 정당한 이익의 행사를 위해 행해진 비판적 의견의 발표, 상관의 부하에 대한 징계와 견책, 공무원의 업무상 고발 또는 비평 및 기타 이에 준하는 경우에는 의견 발표의 형식이나 의견발표가 행하여진 정황에 비추어 모욕이 인정된 때에 한하여 처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조항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 아니더라도 침해자의 침해행위가 정당한 이익의 옹호와 관련되어 있을 때에는 명예훼손죄 등을 가벌성이 없는 것으로 규정하여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위와 같은 입법례나 유엔인권위원회의 권고 및 표현의 자유와의 조화를 고려하면, 진실한 사실의 적시의 경우에는 형법 제310조의 ‘공공의 이익’도 보다 더 넓게 인정되어야 한다. 특히 공공의 이익관련성 개념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공공의 관심사 역시. 상황에 따라 쉴 새 없이 바뀌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적인 인물, 제도 및 정책 등에 관한 것만을 공공의 이익 관련성으로 한정할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사실적시의 내용이 사회 일반의 일부 이익에만 관련된 사항이라도 다른 일반인과의 공동생활에 관계된 사항이라면 공익성을 지닌다고 할 것이고, 이에 나아가 개인에 관한 사항이더라도 그것이 공공의 이익과 관련되어 있고 사회적인 관심을 획득한 경우라면 직접적으로 국가·사회 일반의 이익이나 특정한 사회 집단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형법 제310조의 적용을 배제할 것은 아니다. 사인이라도 그가 관계하는 사회적 활동의 성질과 사회에 미칠 영향을 헤아려 공공의 이익에 관련되는지 판단하여야 한다.

 

6. 사안에 관한 판단

대법원 2020. 11. 19. 선고 2020도5813 전원합의체 판결은 다음과 같은 취지의 원심판단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은 명예훼손죄의 공연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하였다.

가. 사실인정

가) 피고인과 피해자는 이웃 주민으로 여러 가지 문제로 갈등관계에 있었고, 이 사건 당일에도 피고인은 피해자의 집 뒷길에서 피해자와 말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공소사실과 같은 발언을 하게 되었다.

나) 피고인의 남편인 공소외 2와 피해자의 처인 공소외 4는 피고인과 피해자가 큰소리로 다투는 소리를 듣고 각자의 집에서 나오게 되었는데, 피해자와 공소외 4는 ‘피고인이 전과자라고 크게 소리쳤고, 이를 공소외 3 외에도 마을 사람들이 들었다’는 취지로 일관되게 진술하였다.

다) 피고인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앞에서도 ‘피해자는 아주 질이 나쁜 전과 자’라고 큰 소리로 수회 소리치기도 하였다.

라) 피해자가 사는 곳은 피해자, 공소외 3과 같은 성씨를 가진 집성촌으로 피해자에게 전과가 있음에도 공소외 3은 ‘피고인으로부터 피해자가 전과자라는 사실을 처음 들었다’고 진술하여 피해자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 공연성 판단

이러한 사실관계를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공소외 3과 피해자의 친분 정도나 적시된 사실이 피해자의 공개하기 꺼려지는 개인사에 관한 것으로 주변에 회자 될 가능성이 큰 내용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공소외 3이 피해자와 친척 관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파가능성이 부정된다고 볼 수 없고(피해자와 공소외 3 사이의 촌수나 구체적 친밀관계가 밝혀진 바도 없다), 오히려 피고인은 피해자와의 싸움 과정에서 단지 피해자를 모욕 내지 비방하기 위하여 공개된 장소에서 큰 소리로 말하여 다른 마을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였던 것으로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였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피고인의 공소사실 발언은 공연성이 인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