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니코틴 먹게 하여 살인 기소
검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인죄로 기소하였다.
가. 피고인은 2010. 5.경 피해자와 혼인하여 아들 1명을 출산하고 살아오던 중, 2018년경 A와 교제하기 시작한 이래 2020년경부터 A로 하여금 자신이 운영하는 공방에서 숙식을 하며 지내도록 하고 A와 함께 외국여행을 다녀오는 등 내연관계로 지내왔다.
나. 피고인은 다액의 대출금 채무, 공방 매출 감소, 각종 공과금 연체 등으로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중 피해자가 사망할 경우 사망보험금, 피해자 소유 부동산 및 예금 등을 상속받는 한편 A와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평소 자신이 전자담배를 피우는 과정에서 소지하게 된 니코틴 원액을 이용하여 피해자를 살해하기로 마음 먹었다.
다. 피고인은 2021. 5. 26. 06:40경 ~ 07:00경 사이에 출근하려는 피해자에게 미숫가루, 꿀, 우유에 불상량의 니코틴 원액을 넣어 혼합한 음료(미숫가루 음료)를 주고 피해자로 하여금 먹게 하였다[⒜ 쟁점].
라. 피해자가 속쓰림과 오심 증상만 보일 뿐 사망하지 않자 피고인은 같은 날 20:00경 ~ 20:30경 사이에 흰죽을 만든 후 그 안에 다량의 니코틴을 넣어 피해자로 하여금 국그릇 반 정도의 흰죽을 먹게 하였다[⒝ 쟁점].
피해자는 같은 날 22:30경 극심한 흉통을 호소하며 피고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피고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대에 의해 같은 날 23:26경으로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은 후 2021. 5. 27. 01:30경 귀가하였다.
마. 피고인은 이와 같이 피해자를 살해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자, 같은 날 01:30경 ~ 02:00경 사이에 피해자에게 물을 마시라고 권유하면서 다량의 니코틴 원액을 탄 찬물을 건네주고 피해자로 하여금 이를 마시도록하였다[⒞ 쟁점].
바. 같은 날 03:00경 무렵 피해자로 하여금 급성 니코틴 중독 등으로 사망하게 하여 피고인은 피해자를 살해하였다.
※ 피고인은 남편 A가 사망하자 내연남과 함께 거주할 집의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권한 없이 A명의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피해자 B회사에 접속한 다음 자신이 마치 A인 것처럼 피해자 B회사로부터 본인 인증을 받아 300만 원을 대출받음으로써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였다는 컴퓨터 등 사용사기 부분에 대해 1심, 2심, 대법원은 유죄로 인정하였다(논의 대상에서 제외).
2. 법원, 니코틴 살인 인정 징역 30년 인정
가. 1심은 니코틴 원액 미숫가루 음료, 흰죽 섭취[쟁점 ⒜ ⒝], 니코틴 원액 찬물 섭취[쟁점 ⒞] 살인죄와 컴퓨터 등 사용사기죄를 인정하여 징역 30년을 선고하였다.
나. 2심은 니코틴 원액 미숫가루 음료, 흰죽 섭취[쟁점 ⒜ ⒝] 행위는 무죄로, 니코틴 원액 찬물 섭취[쟁점 ⒞] 살인죄와 컴퓨터 등 사용사기죄를 인정하여 징역 30년을 선고하였다. 이에 검사와 피고인은 상고하였다.
1) 쟁점 ⒜ ⒝
피해자가 응급실에 이송되었을 당시 채취한 혈액은 적기에 확보되지 못하고 보관기간 경과로 폐기되었고, 피해자가 미숫가루 음료나 흰죽을 섭취하고 호소한 증상들, 응급실 이송 후 피해자의 상태,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 등을 종합하면, 피해자가 미숫가루 음료나 흰죽을 섭취하고 호소한 증상들이 니코틴 음용에 따른 것이 아닐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배제하기 어렵다.
2) 쟁점 ⒞
피해자의 사인은 급성 니코틴 중독이고, 니코틴이 피해자에게 투여된 방법은 경구 투여로 추정되는데, 피해자가 니코틴을 음용한 정황은 응급실에서 귀가한 후 피고인이 건네 준 찬물 한 컵을 마신 때뿐이라는 부검의 등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고, 그 밖에 사망현장에서 피해자가 스스로 니코틴을 음용하였다고 볼 만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으며, 내연관계 유지나 피해자의 사망으로 취득하게 되는 사망보험금 등 경제적 목적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할 만한 충분한 동기가 되므로, 피고인은 피해자를 살해한 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었다.
3. 대법원, 니코틴 살인 증명 부족
가. 무죄추정의 원칙, 간접증거ㆍ간접사실로 증명 여부가 쟁점
무죄추정의 원칙, 간접증거ㆍ간접사실에 따른 증명에 관한 법리에 비추어 피고인의 살인 범행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다.
나. 니코틴 살인 증명 부족으로 살인죄 인정 부정
대법원(주심 대법관 노정희)은 2023. 7. 27. 다음과 같은 이유로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피고인에 대하여 징역 30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ㆍ환송하였다.
1) 간접살인 인정 법리
살인죄와 같이 법정형이 무거운 범죄의 경우에도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를인정할 수 있으나, 그러한 유죄 인정에는 공소사실과 관련성이 깊은 간접증거들에 의하여 신중한 판단이 요구되므로, 주요사실의 전제가 되는 간접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의 증명이 있어야 하고, 그 하나하나의 간접사실이 상호 모순, 저촉되지 않아야 함은 물론 논리와 경험칙, 과학법칙에 의하여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유죄의 인정은 범행 동기, 범행수단의 선택, 범행에 이르는 과정, 범행 전후 피고인의 태도 등 여러 간접사실로 보아 피고인이 범행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할 만큼 압도적으로 우월한 증명이 있어야 한다. 피고인은 무죄로 추정된다는 것이 헌법상의 원칙이고, 그 추정의 번복은 직접증거가 존재할 경우에 버금가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대법
원 2017. 5. 30. 선고 2017도1549 판결 등 참조).
2) 니코틴 원액 미숫가루 음료, 흰죽 섭취 증명 부족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니코틴 원액을 넣은 미숫가루 음료와 흰죽을 섭취하게 하여 피해자를 살해하려 하였다는 부분[쟁점 ⒜ ⒝]에 관하여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아 무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잘못이 없다.
3) 니코틴 원액 찬물 섭취 증명 부족
살인의 공소사실 중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니코틴 원액을 탄 찬물을 건네주고 이를 마시도록 하여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부분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형사재판에서 요구되는 증명의 정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거나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쟁점 ⒞ 파기ㆍ환송].
가) 범행 준비 및 실행 관련
원심이 유죄 인정의 간접증거로 든 이○○의 감정의견부검 결과 심혈에서 5.21㎎/L, 말초혈액에서 2.49㎎/L의 치사 농도에 해당하는 니코틴이 검출되어 피해자가 급성 니코틴 중독으로 사망한 것은 확실하고, 증상이 호전된 뒤 피해자의 니코틴 음용 정황은 피고인이 건네준 찬물 한 컵을 마실 때밖에 없으므로, 이때 니코틴을 음용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부검결과나 위 감정의견 등은 피해자의 사인이 급성 니코틴 중독이라는 점 및 피해자가 응급진료센터를 다녀온 후 피해자에게 과량의 니코틴 경구 투여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증거방법으로서 의미가 있을 뿐, 이로써 ‘피고인이 찬물에 니코틴 원액을 타서 피해자로 하여금 음용하게 하였다‘는 공소사실이 증명된다고 볼 수는 없다.
피해자에게 찬물을 준 후 밝혀지지 않은 다른 경위로 피해자가 니코틴을 음용하게 되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니코틴에 노출 시 오심, 구토, 설사 등 증상이 통상 15분 이내로 발현되고, 경구 투여 시 최고 농도에 이르는 시간은 약 30~66분, 투여 후 최고 농도 시기를 지나면 빠르게 회복된다. [그런데] 피해자의 체내 니코틴이 최고 농도에 이르게 되는 시각에 휴대전화 로그기록 등 행적이 나타난다.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주었다는 물 컵에는 2/3 이상 물이 남아있었다. 피해자가 피고인이 준 찬물을 거의 마시지 않고 남긴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컵의 용량, 물의 양, 피고인이 넣은 니코틴 원액의 농도와 양 등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피고인이 니코틴을 이용한 살해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니코틴 원액의 일반적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니코틴의 치사량, 구할 수 있는 니코틴 원액 내지 희석액의 농도와 사망의 결과에 이를 만한 투입량, 투입 방법 등에 대한 정보와 분석이 필요하다. [그런데] 수사기관은 피고인의 사전 범행 준비ㆍ계획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피해자의 생체시료에서 검출된 니코틴과 피고인으로부터 압수한 니코틴 제품의 연관성이 밝혀진 바 없다. 압수된 니코틴 제품 중 사용분에 포함된 니코틴 함량은 피해자의 니코틴 음용 추정량과 비교할 때 그 차이가 상당히 크다. 압수된 니코틴 제품이 피해자를 살해한 범행에 사용된 제품이라거나 그 존재가 피고인의 범행 준비 정황이라고 단
정하기 어렵다.
나) 범행 동기 관련
이 사건과 같이 계획적이고 범행 상대가 배우자 등 가족인 경우 그 범행은 단순히 인륜에 반하는 데에서 나아가 범인 자신의 생활기반인 가족관계와 혈연관계까지 파괴되므로, 가정생활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감내하고라도 살인을 감행할 만큼 강렬한 범행 유발 동기가 존재하여야 한다.
내연관계 유지 및 피해자의 사망으로 인하여 취득하게 되는 경제적 목적이 계획적으로 배우자인 피해자를 살해할 만한 충분한 동기로 작용하였는지에 관해서는 의문이 있다. 내연관계 유지나 경제적 목적이 살인 동기가 되었다고 볼 정도인지 추가 심리가 필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