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성실의 원칙

1. 신의성실의 원칙의 의미

  가. 신의성실의 원칙은 법률관계의 당사자가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하여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해서는 안 된다는 추상적 규범을 말한다(대법원 2020. 10. 29. 선고 2018다228868 판결). 

  나. 권리의 행사는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하며(민법 제2조), 법률관계의 당사자는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하여 형평에 어긋나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하여서는 아니 되고, 권리행사가 정의관념에 비추어 용인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경우에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의하여 그 권리행사를 부정할 수 있다(대법원 2006. 3. 10. 선고 2002다1321 판결).

 

2. 신의성실의 원칙의 적용요건

  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권리행사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신의를 제공하였거나 객관적으로 보아 상대방이 신의를 가지는 것이 정당한 상태에 이르러야 하고 이와 같은 상대방의 신의에 반하여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정의관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 상대방에게 신의를 창출한 바 없거나 상대방이 신의를 가지는 것이 정당한 상태에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권리행사가 정의의 관념에 반하지 않는 경우에는 권리행사를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대법원 2020. 10. 29. 선고 2018다228868 판결). 

<판례> 종전 소유자에게 사용료를 안 받더라도 신의성실원칙 위반 아냐

지목이 도로인 토지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갑 교회와 을 교회가 위 도로를 통해서만 공로로 출입할 수 있는 인접 건물과 그 대지의 소유자인 병 주식회사를 상대로 자신들이 위 도로의 지분을 보유한 기간 동안 병 회사가 위 도로를 통행하면서 법률상 원인 없이 사용료에 해당하는 이익을 얻고 자신들에게 그 지분에 해당하는 손해를 입게 하였다며 부당이득반환을 구하였다.

갑 교회와 을 교회 또는 위 도로 지분의 종전 소유자가 도로 지분을 취득할 당시부터 주위 토지 또는 인접 대지의 소유자에게 위 도로를 무상으로 통행에 제공하기로 용인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을 교회가 위 인접 대지에 건축허가를 받으면서 위 도로에 대한 도로 지정·공고로 건축법 제44조 제1항 본문의 접도의무를 충족하게 되었다는 사정이나 갑 교회와 을 교회가 위 인접 건물과 대지의 종전 소유자로부터 도로의 사용료를 지급받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는 위 부당이득 반환청구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대법원 2020. 10. 29. 선고 2018다228868 판결). 

  나.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신의칙에 비추어 용납할 수 없는 것인 때에는 이를 부정하는 것이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을 것이나, 일단 유효하게 성립한 계약상의 책임을 공평의 이념 및 신의칙과 같은 일반원칙에 의하여 제한하는 것은 자칫하면 사적 자치의 원칙이나 법적 안정성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으므로 신중을 기하여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하여야 한다(대법원 2015. 10. 15. 선고 2012다64253 판결).

<판례> 손해배상 조건을 상대방이 알고 있어도 신의칙을 적용할 수 없다

갑 주식회사가 을 주식회사의 주주들인 병 주식회사 등과 주식양수도계약을 체결하면서, 병 회사 등이 ‘을 회사가 행정법규를 위반한 사실이 없고, 행정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거나 협의를 진행하는 것은 없다’는 내용의 진술과 보증을 하고, 진술 및 보증 조항 위반사항이 발견될 경우 손해를 배상하기로 하였는데, 갑 회사가 당시 이미 을 회사 등과 담합행위를 하였고, 양수도 실행일 이후 을 회사에 담합행위를 이유로 과징금이 부과되었다.

주식양수도계약서에 갑 회사가 계약 체결 당시 진술 및 보증 조항의 위반사실을 알고 있는 경우에는 손해배상책임 등이 배제된다는 내용이 없는 점 등에 비추어, 주식양수도계약서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는, 양수도 실행일 이후에 진술 및 보증 조항의 위반사항이 발견되고 그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하면, 갑 회사가 위반사항을 계약 체결 당시 알았는지와 관계없이 병 회사 등이 손해를 배상하기로 합의한 것이고,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행위에 대한 조사를 개시한 것은 주식양수도계약의 양수도 실행일 이후여서, 갑 회사가 주식양수도계약을 체결할 당시 공정거래위원회가 을 회사에 담합행위를 이유로 거액의 과징금 등을 부과할 가능성을 예상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기는 어려우므로, 주식양수도계약에 따른 갑 회사의 손해배상청구가 공평의 이념 및 신의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본 원심판단에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대법원 2015. 10. 15. 선고 2012다64253 판결).

  다. 강행규정을 위반한 법률행위를 한 사람이 스스로 그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배되는 권리의 행사라는 이유로 이를 배척한다면 강행규정의 입법 취지를 몰각시키는 결과가 되므로 그러한 주장은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음이 원칙이다. 다만 신의칙을 적용하기 위한 일반적인 요건을 갖추고 강행규정성에도 불구하고 신의칙을 우선하여 적용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강행규정을 위반한 법률행위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배될 수 있다(대법원 2021. 11. 25. 선고 2019다277157 판결).

<판례> 지상권 설정등기 이후 35년간 병원 운영하다가 무효 주장은 신의칙 위반 

갑 의료법인의 기본재산인 토지에 을 지방자치단체가 건물을 신축하였고 갑 법인은 을 지방자치단체에 지상권설정등기를 해 주었는데, 갑 법인이 을 지방자치단체와 위탁경영 계약을 체결한 다음 위 건물에서 약 35년간 계속하여 병원을 운영하다가, 위 지상권설정등기가 의료법 제48조 제3항에서 정한 시·도지사의 허가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무효라고 주장하며 그 말소를 구하였다.

위 지상권설정등기 말소청구는 자신의 의무이행을 통해 지상권설정등기에 따른 부담을 용인해야 하는 지위에 있는 갑 법인이 오히려 의무이행을 하지 않은 것을 기화로 권리자가 될 을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그 말소를 청구하는 것인 점, 갑 법인이 위탁경영 계약을 통해 위 건물에서 병원을 계속해서 운영하기 위해서는 지상권설정등기가 필요하므로 위 지상권설정등기는 갑 법인의 설립 목적에 부합하고, 갑 법인의 재산을 부당하게 감소시키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료법 규정의 취지와 입법 목적에도 어긋나지 않는 점, 갑 법인은 지상권설정등기를 한 후 위탁경영 계약에 따라 위 건물에서 병원을 운영하다가 존속기간이 만료될 무렵 스스로 존속기간을 변경하는 지상권변경의 부기등기를 하였고, 그 후에도 아무런 이의제기 없이 위탁경영 계약에 따라 병원을 계속해서 운영하였던 점에 비추어, 위 지상권설정등기 말소청구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되어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2021. 11. 25. 선고 2019다277157 판결).

  ⇒ 의료법 제48조 제3항은 의료법인이 재산을 처분하려면 시·도지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는 의료법인이 재산을 부당하게 감소시키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경영에 필요한 재산을 항상 갖추고 있도록 하여 의료법인의 건전한 발달을 도모하여 의료의 적정을 기하고 국민건강을 보호증진하게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조항으로서 강행규정에 해당한다. 이 규정을 위반한 법률행위를 한 사람이 그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배되는지는 위 법리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3. 노사관계에서 신의성실의 원칙 예시(통상임금과 신의칙)

  가. 단체협약 등 노사합의의 내용이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하여 무효인 경우에, 그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배되는 권리의 행사라는 이유로 이를 배척한다면, 강행규정으로 정한 입법 취지를 몰각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므로, 그러한 주장은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음이 원칙이다. 그러나 노사합의의 내용이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한다고 하여 그 노사합의의 무효 주장에 대하여 예외 없이 신의칙의 적용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본 신의칙을 적용하기 위한 일반적인 요건을 갖춤은 물론,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에도 불구하고 신의칙을 우선하여 적용하는 것을 수긍할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그 노사합의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에 위배되어 허용될 수 없다.

  노사합의에서 정기상여금은 그 자체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전제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 산정 기준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전제로 임금수준을 정한 경우, 근로자 측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가산하고 이를 토대로 추가적인 법정수당의 지급을 구함으로써, 사용자에게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 관념에 비추어 신의에 현저히 반할 수 있다.

  다만 근로관계를 규율하는 강행규정보다 신의칙을 우선하여 적용할 것인지를 판단할 때에는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하여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향상시키고자 하는 근로기준법 등의 입법 취지를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업을 경영하는 주체는 사용자이고, 기업의 경영 상황은 기업 내·외부의 여러 경제적·사회적 사정에 따라 수시로 변할 수 있으므로,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로 배척한다면, 기업 경영에 따른 위험을 사실상 근로자에게 전가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따라서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사용자에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여 신의칙에 위반되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9. 2. 14. 선고 2015다217287 판결).

<판례1> 갑 주식회사 소속 근로자인 을 등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되는지 문제 된 사안에서, 향후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갑 회사 소속의 다른 근로자들이 갑 회사에 청구할 수 있는 추가 법정수당의 규모가 갑 회사의 연간 매출액의 2~4%, 당해 연도 총인건비의 5~10% 정도에 불과한 점, 갑 회사의 당해 연도 기준 이익잉여금에 비추어 추가 법정수당 중 상당 부분을 변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점, 갑 회사가 당해 연도까지 5년 연속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꾸준히 당기순이익이 발생하고 있으며, 매출액도 계속 증가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추가 법정수당을 지급한다고 하여 갑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을 등의 청구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대법원 2019. 2. 14. 선고 2015다217287 판결).

<판례2> 자동차 제조업을 영위하는 갑 주식회사의 사무직 근로자인 을 등이 업적연봉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여 산정한 추가 법정수당의 지급을 구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지 문제 된 사안에서, 업적연봉은 기존의 정기상여금에서 유래한 것이기는 하나, 갑 회사의 임금체계, 지급액 결정 구조, 지급 방법 등을 고려하면, 이를 정기상여금과 동일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업적연봉은 사무직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연봉제의 시행과 함께 도입되었는데, 업적연봉을 포함한 연봉제의 시행은 사무직 근로자의 개별적 동의를 받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을 뿐 이와 관련한 노사 간 협의가 존재하지 않았고, 당시 을 등을 포함한 사무직 근로자들은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지도 않았던 사정 등에 비추어 보면, 업적연봉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노사합의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고, 그러한 노사관행이나 묵시적 합의가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없다는 이유로 을 등의 청구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대법원 2021. 6. 10. 선고 2017다52712 판결).

<비교판례> 자동차 등 제조판매업을 영위하는 갑 주식회사의 근로자인 을 등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여 산정한 추가 법정수당 등의 지급을 구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되는지 문제 된 사안에서, 갑 회사가 지급해야 할 추가 부담액 추정치가 상당한 점, 갑 회사는 상닥 기간 큰 폭의 적자를 내었고, 존립 자체가 위태롭기도 하였던 점 등에 비추어 갑 회사에 상여금 관련 법정수당 등의 지급을 명할 경우 을 등은 당초 합의한 임금수준을 초과하는 예상외의 이익을 얻는 반면 갑 회사는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지출을 하게 됨으로써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으로 보이므로, 을 등의 청구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된다(대법원 2020. 7. 9. 선고 2017다7170 판결).

  나.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지는 추가 법정수당의 규모, 추가 법정수당 지급으로 인한 실질임금 인상률, 통상임금 상승률, 기업의 당기순이익과 그 변동 추이, 동원 가능한 자금의 규모, 인건비 총액, 매출액, 기업의 계속성·수익성, 기업이 속한 산업계의 전체적인 동향 등 기업운영을 둘러싼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 기업이 일시적으로 경영상의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사용자가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경영 예측을 하였다면 그러한 경영상태의 악화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고 향후 경영상의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신의칙을 들어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대법원 2022. 4. 28. 선고 2019다238053 판결).

  ⇒ 피고에게 2014. 1. 이후의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가산하고 이를 토대로 추가적인 법정수당의 지급을 명한다고 하더라도, 피고가 부담하는 금액이 약 9,500만 원으로 추산되고 이는 피고의 기업규모 등에 비추어 볼 때 그다지 많지 않아 피고에게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정도라고 보기 어렵다(대법원 2022. 4. 28. 선고 2019다238053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