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2016헌바55 국가배상법의 과실책임

 

 

헌법재판소 2020. 3. 26. 2016헌바55  결정[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위헌소원(국가배상법의 과실책임 사건)]

 

 

 사건 2016헌바55, 65, 72, 90, 97, 141, 142, 148, 161, 164, 180, 183, 200, 216, 309, 310, 349, 2017헌바264, 269, 270, 394, 469, 518, 2018헌바95, 2019헌바234, 235, 236, 371(병합)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위헌소원
 청구인 [별지 1] 청구인 명단과 같음
 청구인들의 대리인     

법무법인 덕수

담당변호사 김형태, 김진영, 신동미, 정민영, 박수진

 대리인    법무법인 제민
 담당변호사  노희범
 당해사건 [별지 2] 당해사건 목록과 같음
 선고일 2020. 3. 26. 

 

주 문

1. 구 국가배상법(2009. 10. 21. 법률 제9803호로 개정되고, 2016. 5. 29. 법률 제1418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제1항 본문 중 ‘고의 또는 과실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2. 청구인 성○○, 김◆◆, 김⊗⊗, 고○○, 김ΘΘ, 김♠♠, 권□□, 김▽▽, 김♣♣, 김▣▣, 김◐◐의 심판청구를 모두 각하한다.

 

이 유

1. 사건개요

가. 2016헌바55

  (1) 청구인 김○○은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긴급조치’(1975. 5. 13.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로 제정되고, 1979. 12. 7. 대통령공고 제67호로 해제된 것, 이하 ‘긴급조치 제9호’라 한다) 위반으로 구속, 기소되었다가 긴급조치 제9호의 해제로 면소판결을 받았다(전주지방법원 79고합131). 청구인 김□□는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집행유예의 유죄확정판결을 받았다(서울고등법원 75노1564, 최종 심급 판결만 기재. 이하 같다). 그 후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이 선고, 확정되었다(서울고등법원 2014재노12). 나머지 청구인들은 그 가족이다.

  (2) 위 청구인들은 국가를 상대로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 및 이에 따른 수사 및 재판, 그 과정에서의 불법체포․구금 등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1심 법원은 청구인 김□□가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하 ‘민주화보상법’이라 한다)상 생활지원금 등(이하 ‘보상금 등’이라 한다)을 받음으로써 대한민국과 사이에 긴급조치 제9호 위반 사건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 일체에 대하여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발생하였다는 이유로 청구인 김□□의 소를 각하하였다. 1심 법원은, 나머지 청구인들에 대하여는 형벌에 관한 법령이 위헌으로 선언된 경우 그 법령이 위헌으로 선언되기 전에 그 법령에 기초하여 수사가 개시되어 공소가 제기되고 유죄 또는 면소 판결이 선고되었더라도 수사 및 재판 당시에는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무효임이 선언되지 않은 이상 수사기관이나 법관의 수사 및 재판 등 직무행위가 국가배상법상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하였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5. 21. 선고 2014가합572715 판결).

  (3) 위 청구인들은 항소가 기각되자(서울고등법원 2015나2028072), 이에 대하여 상고를 제기하여 상고심(대법원 2015다242245) 계속 중,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본문 중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에 위반하여’ 부분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며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으나 2016. 2. 2. 그 신청이 각하되자(대법원 2016카기1002), 2016. 2. 11.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나. 2016헌바161

  (1) 청구 외 망 정○○과 박○○, 청구인 권○○은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1974. 1. 8.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로 제정되고, 1974. 8. 23. 대통령긴급조치 제5호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와 동 제4호의 해제에 관한 긴급조치’로 해제된 것, 이하 ‘긴급조치 제1호’라 한다)위반으로 유죄확정판결을 받고 복역하였다(정○○: 대법원 74도1407, 박○○, 권○○: 대법원 74도1495). 그 후에 재심을 통하여 무죄판결이 선고, 확정되었다(정○○: 서울고등법원 2011재노118, 박○○, 권○○: 서울고등법원 2011재노121). 나머지 청구인들은 그 가족이다.

  (2) 위 청구인들은 국가를 상대로 긴급조치 제1호에 근거한 수사 및 재판, 그 과정에서 불법체포․구금, 수사기관의 가혹행위 등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1심 법원은 긴급조치 제1호가 당시의 유신헌법마저 위반한 무효의 조치로서 이에 터 잡아 공무원들이 당시의 헌법 및 형사소송법상의 적법절차를 지키지 아니하고 정○○, 박○○, 권○○을 불법 체포․구속하였고, 폭행과 가혹행위를 하였으며, 긴급조치 제1호 및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에 터 잡아 수사 및 재판을 하였으며, 출소 이후에도 감시 및 사찰을 한 사실이 불법행위에 해당함을 인정하여 청구를 일부 인용하였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4. 10. 22. 선고 2013가합543925(일부), 2014가합547160(병합)]. 그러나 항소심 법원은 청구인 권○○의 내란예비죄 관련 가혹행위로 인한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는 한편, 수사 및 재판 당시 긴급조치가 위헌․무효임이 선언되지 아니하였던 이상, 긴급조치 제1호에 근거한 수사와 재판이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위 청구인들의 긴급조치 제1호 위반과 관련된 손해배상청구 부분을 모두 기각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5. 11. 13. 선고 2014나2049713, 2049720(병합) 판결].

  (3) 위 청구인들은 상고하여 상고심[대법원 2015다253375, 253382(병합)] 계속 중,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본문 중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에 위반하여’ 부분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며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으나 2016. 3. 24. 위 신청이 기각되자(대법원 2016카기1007), 2016. 4. 22.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다. 위 두 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사건의 개요는 [별지 3] 사건개요 기재와 같다.

라. 일부 청구인의 사망 및 승계인의 헌법소원심판절차 수계

  청구인 김○○(2016헌바55), 이○○(2016헌바65), 김△△, 양○○, 권□□, 김▽▽(2016헌바72), 김☓☓, 안○○, 홍○○(2016헌바97), 한○○(2016헌바141), 나○○, 양□□(2016헌바164), 박□□(2016헌바309), 곽○○(2016헌바310), 김◇◇, 김◎◎, 배○○, 김▷▷(2016헌바349), 유○○(2017헌바394)은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절차 계속 중 사망하였고, [별지 1] 청구인 명단 기재와 같이 위 각 청구인의 상속인인 승계인들이 위 각 청구인의 이 사건 헌법소원 심판절차를 수계하였다.

마. 사망한 자의 승계인의 헌법소원심판청구

  망 이□□(2016헌바180), 망 한□□(2017헌바518), 망 박△△(2017헌바270), 망 유□□(2017헌바394), 망 김◁◁(2018헌바95), 망 김♤♤(2019헌바234), 망 이△△, 망 김♧♧(2019헌바236)은 헌법소원심판 청구 전 사망하였다. 그 후[별지 1] 청구인 명단 기재와 같이 위 각 망인의 상속인들인 청구인 김⊙⊙ 외 3인(망 이□□의 승계인), 청구인 김●● 외 4인(망 한□□의 승계인), 청구인 김■■ 외 13인(망 박△△의 승계인), 청구인 유△△(망 유□□의 승계인), 청구인 김▲▲ 외 2인(망 김◁◁의 승계인), 청구인 서○○ 외 2인(망 김♤♤의 승계인), 청구인 김▼▼(망 이△△의 승계인), 청구인 윤○○ 외 3인(망 김♧♧의 승계인)이 승계인으로서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청구를 하였다.

2. 심판대상

  청구인들은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본문 중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부분에 관하여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들을 청구하였다.

  위 조항 중 ‘법령을 위반하여’ 부분은, 고의 또는 과실의 대상을 규정한 것이 아니라 국가배상책임의 객관적 요건인 공무원의 행위 자체의 위법성을 규정한 부분으로서 ‘공무원에게 집행행위의 근거가 된 법령의 위헌성에 관한 고의 또는 과실이 없다고 하여 국가배상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위헌’임을 다투는 청구인들의 주장과는 무관하다.

  또한 ‘법령을 위반하여’ 부분이 민법 제750조의 ‘위법’보다 좁은 개념으로서 형식적 법률과 명령을 위반한 경우에만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고 있다는 주장은, 실제 확립된 해석례가 그러하다고 볼 근거가 없음에도 ‘법령을 위반하여’를 임의로 좁게 해석한 다음 그것의 부당성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법령을 위반하여’ 부분을 심판대상에서 제외한다.

  이 사건 심판대상은 구 국가배상법(2009. 10. 21. 법률 제9803호로 개정되고, 2016. 5. 29. 법률 제1418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제1항 본문 중 ‘고의 또는 과실로’ 부분(이하 ‘심판대상조항’이라 한다)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이다. 심판대상조항(밑줄 친 부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심판대상조항]

구 국가배상법(2009. 10. 21. 법률 제9803호로 개정되고, 2016. 5. 29. 법률 제1418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배상책임) 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공무원 또는 공무를 위탁받은 사인(이하 “공무원”이라 한다)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거나,「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에 따라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을 때에는 이 법에 따라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단서 생략)

3. 청구인들의 주장

  대법원은 형벌에 대한 법령이 위헌․무효임이 선언되기 이전에 해당 법령을 집행한 공무원의 수사․재판행위에 대하여는 해당 법령이 위헌․무효임을 알 수 없었다는 이유로 불법행위에 따른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이는 심판대상조항에 근거해서이다. 심판대상조항은 국가배상청구권의 성립요건으로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을 규정하여 법원이 공무원의 ‘법령 위반에 대한 인식’이라는 행위자의 주관적 성립요건을 내세워 국가배상청구권을 제한할 수 있게 하므로, 그러한 요건 없이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에 대하여 국가배상을 하도록 규정한 헌법 제29조 제1항의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한다.

  심판대상조항은 사인에 의한 불법행위로 손해를 입은 경우 행위자의 위법성의 인식을 묻지 않고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는 것과 비교할 때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손해를 입은 경우 손해배상을 받을 가능성을 현저하게 축소시켜 평등원칙 및 법치국가원리에 위배된다.

4. 적법요건에 관한 판단

  재판의 전제성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당해사건은 법원에 적법하게 계속되어 있어야 한다. 만약 당해사건이 부적법한 것이어서 법률의 위헌여부를 따져 볼 필요조차 없이 각하를 면할 수 없는 것일 때에는 헌법소원심판 청구는 적법요건인 재판의 전제성을 흠결한 것으로서 각하될 수밖에 없다(헌재 2015. 11. 26. 2012헌바300 참조).

  2016헌바72 사건의 청구인들 중 청구인 성○○, 김◆◆, 김⊗⊗, 고○○, 김ΘΘ, 김♠♠, 권□□, 김▽▽, 김♣♣, 김▣▣, 김◐◐의 경우, 1심에서 법무법인 ○○에게 소송대리권을 수여한 사실이 인정되지 않아 위 청구인들의 명의로 제기한 소는 부적법하다는 이유로 각하된 뒤, 당해사건인 항소심에서 항소가 기각되었으며(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7. 17. 선고 2013가합544836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6. 1. 28. 선고 2015나2043866 판결), 그 후 상고도 2016. 5. 27. 심리불속행 기각되어(대법원 2016다211040) 소 각하 판결이 확정되었다.

  따라서 청구인 성○○, 김◆◆, 김⊗⊗, 고○○, 김ΘΘ, 김♠♠, 권□□, 김▽▽, 김♣♣, 김▣▣, 김◐◐의 심판청구는 당해사건이 모두 부적법하여 법률의 위헌여부를 따져 볼 필요조차 없이 각하를 면할 수 없으므로, 결국 재판의 전제성이 인정되지 아니하여 부적법하다.

5. 긴급조치 제1호, 제2호, 제9호의 위헌결정과 개별 법령에 의한 보상

  헌법재판소는 헌재 2013. 3. 21. 2010헌바70등 사건에서 긴급조치 제1호, 제2호, 제9호가 모두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하였다. 이로써 긴급조치 제1호, 제2호, 제9호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자들은 헌법재판소법 제75조 제6항, 제47조 제1항 및 제4항에 의하여 재심을 청구하여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재심을 통하여 무죄판결이 선고, 확정된 청구인들은 대부분 형사구금으로 인하여 발생한 피해에 대하여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이하 ‘형사보상법’이라 한다) 제2조, 제5조에 따라 보상금을 지급받았다. 또한 긴급조치 제9호의 해제로 면소판결을 받은 청구인들은 재심청구는 불가능하나 형사보상법 제26조 제1항 제1호, 제11조에 따라 ‘피고인이 면소의 재판을 할 만한 사유가 없었더라면 무죄재판을 받을 만한 현저한 사유가 있었을 경우’에 해당하므로(대법원 2013. 4. 18. 결정 2011초기689 등 참조) 형사보상금 청구가 가능하다.

  또한 긴급조치 위반으로 형사판결 등을 받은 본인 중에는 민주화보상법상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심의․결정되어 생활지원금을 포함한 보상금 등(보상금·의료지원금·생활지원금, 민주화보상법 제10조 제1항)을 지급받는데 동의하여 이를 수령한 청구인들도 일부 있다. 그 중 특히 생활지원금은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30일 이상 구금된 사람,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상이를 입었으나 장해보상을 받지 못한 사람,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해직된 사람으로 재직기간이 1년 이상인 사람’에게 해당 구금일수에 최저생계비를 곱한 금액 등으로 산정된 금액으로 지급된다(민주화보상법 제9조, 같은 법 시행령 제12조의2).

  그러나 청구인들 중에는 형사보상법이나 민주화보상법상 보상대상에서 애당초 제외된 자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가령 구속되었다가 기소된 적 없이 사후적으로 구속 취소된 자,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자 본인은 수사과정에서 구금되었더라도 형사보상금 지급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리고 민주화운동 관련자 본인이더라도 구금일수가 30일 미만이거나 민주화보상법 시행령 제12조의2 제3항에서 정하는 바와 같이 가구당 소득이 일정수준을 넘거나, 일정 급수 또는 연봉등급 이상의 공무원이거나 또는 공공기관에 1년 이상 재직 중인 경우, 또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본인이 아닌 그의 가족으로서 민주화운동으로 인하여 사망한 자의 유족에 해당하는 경우가 아니면 민주화보상법상 보상금 등 지급대상에서 제외된다.

  더욱이 형사보상금은 형사피고인 등으로서 적법하게 구금되었다가 후에 무죄판결 등을 받음으로써 발생하는 신체의 자유 제한에 대한 보상, 즉 형사사법절차에 내재하는 불가피한 위험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서, 국가의 위법·부당한 행위를 전제로 하는 국가배상과는 그 취지 자체가 상이하다(헌재 2010. 10. 28. 2008헌마514등 참조). 형사보상법 제6조 제1항도 “이 법은 보상을 받을 자가 다른 법률에 따라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을 금지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형사보상금을 지급받았다 하더라도 이와는 별도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 최종적인 국가배상금액 산정 시에 형사보상금으로 받은 금액이 공제될 뿐이다(같은 법 제6조 제3항).
또한 민주화보상법상 보상금, 의료지원금, 생활지원금은 적극적·소극적 손해에 대한 배상‧보상을 반영할 뿐, 정신적 손해 부분은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다(헌재 2018. 8. 30. 2014헌바180등 참조).

6. 심판대상조항의 위헌 여부

가. 쟁점

  심판대상조항은 국가배상청구권의 성립 요건으로서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을 요구하고 있다. 그 결과, 공무원의 법 집행 행위가 유효한 법률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이상, 사후적으로 해당 근거 법률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을 받았다 하더라도 위헌인 법률에 근거한 집행행위에 의해 손해를 입은 자는 그 공무원이 해당 법률의 위헌․무효를 알거나 알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이유로 고의 또는 과실을 인정할 수 없는 경우에는 국가배상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게 된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는 긴급조치 제1호, 제9호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공무원의 수사·재판 등 일련의 집행행위에 대한 국가배상청구에 있어 예외 없이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을 요구하는 심판대상조항이 청구인들의 헌법상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하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한편 심판대상조항이 과실책임주의를 취하고 있으므로 공무원의 위법행위에 의해 손해를 입은 피해자라 하더라도 위법한 직무행위를 행한 공무원에게 고의 또는 과실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배상 가능성이 달라진다. 이에 따른 평등원칙 위배 여부는 결국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의 주관적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국가배상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의 위헌 여부와 동일한 내용이 될 것이므로 별도로 판단하지 아니한다(헌재 2015. 4. 30. 2013헌바395 참조).

  또한 청구인들은 심판대상조항이 공무원의 위법행위에 대한 국가배상가능성을 현저히 축소시킴으로써 법치국가원리를 위배한다고 주장하나, 이 역시 심판대상조항이 과실책임주의를 취하는 것이 헌법상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이 사건에서 별도의 쟁점으로 삼을 실익이 없다.

나. 국가배상청구권의 침해 여부

  (1) 국가배상청구권의 의의 및 심사기준

  헌법상의 국가배상청구권에 관한 규정은 국가배상청구권을 청구권적 기본권으로 보장하며, 국가배상청구권은 그 요건에 해당하는 사유가 발생한 개별 국민에게는 금전청구권으로서의 재산권으로 보장된다(헌재 1996. 6. 13. 94헌바20; 헌재 1997. 2. 20. 96헌바24 참조).

  헌법상 국가배상청구권이 성립하기 위한 요건으로서 헌법 제29조 제1항 제1문은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손해를 받은’ 것을 요건으로 하나, 한편으로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라고 하여 국가배상청구권의 구체적 형성을 법률에 유보하고 있다. 따라서 헌법상 국가배상청구권의 ‘불법행위’ 역시 이를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이 국가배상청구권의 성립요건으로서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을 규정한 것은 법률로 이미 형성된 국가배상청구권의 행사 및 존속을 제한한다고 보기 보다는 국가배상청구권의 내용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므로, 헌법상 국가배상제도의 정신에 부합하게 국가배상청구권을 형성하였는지의 관점에서 심사하여야 한다(헌재 2015. 4. 30. 2013헌바395 참조).

  이하에서는 심판대상조항이 국가배상청구권의 성립요건으로서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을 요구함으로써 무과실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 입법형성권의 자의적 행사로서 헌법상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살펴본다.

  (2) 선례의 결정요지

  헌법재판소는 2015. 4. 30. 2013헌바395 결정에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본문 중 ‘고의 또는 과실로’ 부분이 헌법상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으며, 그 주된 요지는 다음과 같다.

  『헌법 제29조 제1항 제1문은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국가 또는 공공단체의 책임을 규정하면서 제2문은 ‘이 경우 공무원 자신의 책임은 면제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헌법상 국가배상책임은 공무원의 책임을 일정 부분 전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고, 헌법 제29조 제1항에 법률유보 문구를 추가한 것은 국가재정을 고려하여 국가배상책임의 범위를 법률로 정하도록 한 것으로 해석된다.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이 없는데도 국가배상을 인정할 경우 피해자 구제가 확대되기는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원활한 공무수행이 저해될 수 있어 이를 입법정책적으로 고려할 필요성이 있다. 외국의 경우에도 대부분 국가에서 국가배상책임에 공무수행자의 유책성을 요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국가배상법상의 과실관념의 객관화, 조직과실의 인정, 과실 추정과 같은 논리를 통하여 되도록 피해자에 대한 구제의 폭을 넓히려는 추세에 있다. 피해자구제기능이 충분하지 못한 점은 이 사건 법률조항의 해석‧적용을 통해서 완화될 수 있다. 이 사건 법률조항이 국가배상청구권을 형해화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이 사건 법률조항이 국가배상청구권의 성립요건으로서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을 규정한 것을 두고 입법형성의 범위를 벗어나 헌법 제29조에서 규정한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3) 선례를 변경할 사정이 있는지 여부

  (가) 청구인들은, 과거 긴급조치 제1호 또는 제9호 위반을 이유로 수사나 재판 등을 받고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당사자 혹은 그 친족으로서, 심판대상조항이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 외에 이른바 ‘위법성의 인식’을 국가배상청구권의 요건으로 규정하는 것이어서, 헌법 제29조 제1항에 따른 청구인들의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청구인들의 이러한 주장은 공무원이 특정 법률에 근거하여 이를 집행할 당시에는 해당 법률이 위헌․무효임을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법률이 사후에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을 받는 등 헌법상 정당화될 수 없는 법률임이 확인되었다면 해당 법률에 근거한 집행행위로 손해를 입은 피해자는 법 집행 당시의 공무원에게 해당 법률에 대한 위법성 인식이 있었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국가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보인다. 즉, 위와 같은 경우에는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심판대상조항은 예외 없이 해당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을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으로 함으로써 청구인의 헌법상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무원이 법률을 집행할 때 그 법률이 사후에 위헌․무효가 될 것인지 여부까지 고려하여 집행을 할지 여부를 결정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설령 그러한 경우까지를 고려하여 법을 집행하더라도 시대적 상황이 변화하면 당시에는 합헌적이라고 판단되던 제도들도 이후에는 위헌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등 얼마든지 상황이 변할 수 있다. 위와 같은 경우에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게 되면 과거에 행해진 법 집행행위로 인해 사후에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게 될 것이다. 이는 국가의 법 집행행위 자체를 꺼리게 하여 소극적인 행정으로 일관하거나, 행정의 혼란을 초래하여 국가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못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대법원은 2014. 10. 27. 선고 2013다217962 판결에서 ‘형벌에 관한 법령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하였거나 법원에서 위헌·무효로 선언된 경우, 그 법령이 위헌으로 선언되기 전에 그 법령에 기초하여 수사가 개시되어 공소가 제기되고 유죄판결이 선고되었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수사기관의 직무행위나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가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서 말하는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하여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하였다. 국가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되도록 하려면, 위와 같은 경우라 하더라도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으로서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 요건에 예외를 인정하기는 어렵다.

  (나) 다만 청구인들이 심판대상조항의 위헌성을 주장하게 된 계기를 제공한 당해사건은, 인권침해가 극심하게 이루어진 긴급조치 제1호 또는 제9호의 발령과 그 집행을 근거로 한 것이므로 다른 일반적인 법 집행 상황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이러한 경우에는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을 완화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긴급조치 제1호는 구 헌법(1972. 12. 27. 헌법 제8호로 개정되고, 1980. 10. 27. 헌법 제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유신헌법’ 이라 한다)을 비판하거나 개정을 주장하는 등의 행위를 일절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영장 없이 체포, 구속 등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며, 긴급조치 제9호는 모든 집회․시위, 특히 학생의 집회․시위와 정치관여행위를 금지하면서 위반자에 대해서는 주무부 장관이 학생의 제적, 소속 학교의 휴업, 휴교, 폐쇄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서 국민의 참정권, 표현의 자유,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 신체의 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하는, 헌법상 용인되기 어려운 규범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긴급조치가 발령되고 시행될 1970년대 후반에는 헌법재판소에 의한 헌법재판제도가 존재하지 않았고,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이 ‘제1항과 제2항의 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헌적인 규범의 효력 상실을 선언할 기구가 사실상 부재하였다. 그리하여 이로부터 한참 뒤인 1987년 개정헌법에서 비로소 헌법재판소의 설립 및 헌법소원을 통한 위헌법률의 통제제도가 도입되었고, 2013년에 이르러서야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긴급조치 제1호, 제9호가 위헌으로 결정되었으며, 대법원 역시 긴급조치 제1호와 제9호가 헌법에 위배되어 무효라 선언한 바 있다[대법원 2010. 12. 16. 선고 2010도5986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3. 4. 18.자 2011초기689 전원합의체 결정 등 참조].

  위와 같이 긴급조치 제1호와 제9호는 국민의 기본권을 극단적으로 제한하는 위헌적인 규범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적인 상황으로 인하여 201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위헌으로 선언될 수 있었던 만큼, 다른 일반 법률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위와 같은 긴급조치로 인해 발생한 피해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지 않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보상의 필요성 때문에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으로서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 요건에 예외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은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국가가 국가배상법에 따라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라는 것으로, 국가배상책임의 일반적 요건사항을 정한 것에 불과할 뿐, 국가의 행위로 인한 모든 손해가 이 조항으로 구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행위로 인한 손해 중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는 이 조항으로 구제를 받으면 되고, 그렇지 않더라도 피해에 대한 구제가 필요하다면 다른 방법으로 구제할 수 있다.

  긴급조치 제1호 또는 제9호로 인한 손해의 특수성과 구제 필요성 등을 고려할 때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 여부를 떠나 국가가 더욱 폭넓게 구제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라면, 이는 국가배상책임의 일반적 성립요건을 규정한 심판대상조항이 아니라 국민적 합의를 토대로 입법자가 별도의 입법을 통해 구제하면 된다.

  (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심판대상조항이 헌법상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헌법재판소의 선례는 여전히 타당하고, 이 사건에서 선례를 변경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볼 수 없다.

다. 소결

  심판대상조항은 청구인들의 헌법상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하지 아니한다.

7. 결론

그렇다면 청구인 성○○, 김◆◆, 김⊗⊗, 고○○, 김ΘΘ, 김♠♠, 권□□, 김▽▽, 김♣♣, 김▣▣, 김◐◐의 심판청구는 부적법하여 모두 각하하고, 심판대상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하므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은 심판대상조항에 대한 재판관 김기영, 재판관 문형배, 재판관 이미선의 아래 8.과 같은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나머지 관여 재판관들의 일치된 의견에 의한 것이다.

 

8. 재판관 김기영, 재판관 문형배, 재판관 이미선의 반대의견

가. 심판대상조항의 원칙적 합헌성

  헌법재판소는 헌재 2015. 4. 30. 2013헌바395 결정에서, 국가배상책임의 본질에 관한 논의로부터 국가배상에 무과실책임이 포함되는지에 관한 결론이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것은 아니고, 국가배상제도에 피해자 구제기능 및 손해분산기능이 있는 것 외에 제재기능 및 위법행위 억제기능도 있음이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사정 등에 비추어 볼 때, 헌법상 국가배상책임은 공무원의 책임을 일정 부분 전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점, 헌법 제29조 제1항에 법률유보 문구를 추가한 것은 국가배상 관련 입법에 국가재정을 고려할 수 있게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이 없는데도 국가배상을 인정하면 원활한 공무수행이 저해될 수 있음을 입법정책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는 점 등을 근거로, 심판대상조항이 국가배상청구권의 성립요건으로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을 규정한 것을 두고 입법형성의 범위를 벗어나 헌법 제29조의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일반적인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에 있어서는 위 선례의 판단이 타당하다.

나. 심판대상조항 중 ‘긴급조치 제1호,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을 통한 국가의 의도적·적극적 불법행위에 관한 부분’에 대한 예외적 위헌성

  (1) 헌법재판소의 선례가 특정 법률조항에 관하여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하였다 하더라도, 그 법률조항 중 특수성이 있는 이례적인 부분의 위헌 여부가 새롭게 문제된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별개로 다시 검토하여야 한다(헌재 2018. 8. 30. 2014헌바148등 참조).

  (2)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긴급조치 제1호 또는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을 통한 국가의 불법행위는 긴급조치 제1호 또는 제9호에 근거하여 수사를 진행하거나 공소를 제기한 수사기관의 직무행위와 유죄판결을 한 법관의 직무행위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행위는 아래에서 보는 것과 같이 국민의 기본권을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침해함으로써 국가의 본질에 배반하는 성격을 가지는 불법행위로서, 일반적인 국가의 불법행위와는 다른 특수성을 갖고 있다.
(가) 긴급조치 제1호와 제9호는 우리 헌법의 근본이념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적 보장 영역에 속하는 정부에 대한 비판을 금지하고, 주권자이자 헌법개정권력자인 국민의 헌법 개정 주장을 원천적으로 배제한 규범이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의 근본원리인 국민주권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부합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기본권 제한에 있어서 준수하여야 할 입법목적의 정당성과 방법의 적절성조차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그 위헌성의 정도가 심각하다(헌재 2013. 3. 21. 2010헌바132등 참조).

  구체적으로 보면, 긴급조치 제1호와 제9호가 유신헌법에 대하여 비판적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금지하고, 유신헌법의 개정을 주장하고 제안하는 것을 금지한 점, 긴급조치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금지한 점, 이러한 금지된 의견을 방송·보도·출판 등의 방법으로 타인에게 알리는 것을 금지한 점, 긴급조치를 위반한 자를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구속․압수․수색할 수 있도록 하고 형벌에 처하도록 한 점에 내포된 위헌성은 그 자체로 명백하고 또한 중대하다. 더 심각한 것은, 그 위헌성이 정당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에서 피치 못하게 수반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기 위한 분명한 의도로 긴급조치 제1호, 제9호가 발령되었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이다(헌재 2018. 8. 30. 2015헌마861등 재판관 김이수, 안창호의 반대의견 참조).

  긴급조치 제1호와 제9호의 중대한 위헌성은 이를 적용·집행한 공무원의 직무행위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발현되었는바, 국가는 긴급조치 제1호,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을 통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의도적이고도 적극적으로 침해하였고, 이는 국민의 기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여야 하는 의무를 부담하는 존재인 국가가 자신의 존재론적 의미를 망각한 채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취지에 반하는 것으로서 국가의 본질을 거스르는 행위이자 헌법가치를 정면으로 훼손하는 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다(헌재 2019. 2. 28. 2016헌마56 재판관 이석태, 김기영의 반대의견 참조).

  이러한 점에서 긴급조치 제1호,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을 통한 국가의 의도적·적극적 불법행위는 일반적인 국가의 불법행위에 비하여 그 위법성의 정도나 비난가능성이 매우 크다.

  (나) 국가긴급권의 행사는 통상적인 국가작용과 달리 기본권에 대한 광범위하고 중대한 제한 및 국가기능과 권한의 예외적 집중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그로 인한 피해가 심각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청구인들의 경우, 긴급조치 제1호 또는 제9호에 의하여 본인이나 가족이 영장 없이 체포되고 장기간 구금되거나, 헌법 개정에 관한 의견을 표현한 것만으로도 형사처벌을 받아 복역하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이와 같은 심각한 피해는 사후 구제의 미비로 더욱 심화되었다. 유신헌법이 긴급조치에 대한 사법심사 자체를 부정하여 긴급조치의 위헌성과 그에 기한 직무행위의 위법성을 다툴 수 없었던 데다, 201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긴급조치 제1호, 제9호에 대한 위헌선언이 이루어졌는데, 위헌선언이 있기 전까지 사실상 청구인들은 피해 회복을 위한 규범적 공백 상태에 방치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 이처럼 긴급조치 제1호,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을 통한 국가의 불법행위의 위법성이 매우 크고 이로 인하여 국민의 기본권이 중대하게 침해되었음에도, 이를 직접 실행한 공무원은 당시 시행 중이던 긴급조치에 근거하여 통상적인 지휘체계에 따라 직무행위를 수행한 것에 불과하여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공무원 개인의 고의나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긴급조치 제1호,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을 통한 국가의 의도적·적극적 불법행위는 공무원 개인의 행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국가 조직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불법행위를 실제로 수행한 공무원은 국가에게는 교체 가능한 부품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3)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가가 긴급조치 제1호,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을 통하여 의도적·적극적으로 행한 불법행위는 불법의 심각성, 피해의 중대성, 불법행위 실행에 있어 국가의 개별 공무원에 대한 실질적인 행위 지배라는 측면에서 특수하고 이례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러한 행위를 일반적인 국가배상책임 발생 사유로 상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아니하다. 심판대상조항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선례도 이와 같이 특수하고 이례적인 경우를 규율하는 부분에 대하여 판단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특수성으로 인해 긴급조치 제1호,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에 의한 국가의 의도적·적극적 불법행위는 일반적인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을 달리하므로, 그에 대한 국가배상청구권 역시 일반적인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에 대한 국가배상청구권과 다른 유형에 해당된다. 따라서 국가배상청구권에 관한 입법형성의 일탈 여부를 결정짓는 형량 요소들에 관한 판단 역시 달라야 하고 이에 따라 입법자의 재량의 범위도 달라진다.

  이와 달리 양자를 구별하지 아니한 채 일반적인 국가배상 사건에서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을 국가배상책임의 요건으로 하는 논리를 심판대상조항 중 위와 같은 예외적인 부분의 입법형성권 한계 일탈 여부 판단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는 헌법 제11조의 평등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헌법재판권의 행사이다(헌재 2018. 8. 30. 2014헌바148등 참조).

  헌법재판소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제2조 제1항 제3호에 규정된 ‘1945년 8월 15일부터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에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 제4호에 규정된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상해·실종사건, 그 밖에 중대한 인권침해사건과 조작의혹사건’과 같이 특수성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 민법 제166조 제1항, 제766조 제2항의 소멸시효 객관적 기산점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의 위헌 여부를 별도로 판단하여 위헌의 결론에 이르렀다(헌재 2018. 8. 30. 2014헌바148등 참조). 이와 마찬가지로 긴급조치 제1호,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을 통하여 국가가 의도적·적극적으로 행한 불법행위의 특수성과 평등원칙에 부합하는 헌법재판권 행사의 필요성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사건은 심판대상조항 중 특수하고 이례적인 부분의 위헌 여부가 새롭게 문제되는 경우에 해당한다.

  따라서 국가배상청구권을 형성하는 심판대상조항이 원칙적으로 헌법에 위반되지 않더라도, 심판대상조항 중 긴급조치 제1호,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을 통한 국가의 의도적·적극적 불법행위에 관한 부분의 위헌 여부는 별개로 다시 검토하여야 한다.

  (4) 다음으로, 심판대상조항 중 긴급조치 제1호,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을 통한 국가의 의도적·적극적 불법행위에 관한 부분의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을 살펴본다.

  헌법은 제23조 제1항의 재산권 규정의 특칙으로 제29조 제1항에서 국가배상청구권을 보장하고 있다. 국가배상청구권은 불법행위의 주체가 국가라는 점에서 경제적 손해의 회복이라는 일반적인 재산권 보장의 의미를 넘어서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우리 헌법은 위와 같이 별도의 규정을 두어 이를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헌재 2018. 8. 30. 2014헌바180등 참조).
우리 헌법이 국가배상청구권을 이와 같은 취지에서 명문의 규정을 두어 기본권으로 특별히 보장하는 이상, 입법자가 헌법 제29조 제1항의 법률유보에 따라 국가배상청구권의 구체적인 내용을 법률로 형성할 때에는 단지 형식적인 권리나 이론적인 배상 가능성만을 허용하여서는 아니 되고, 권리구제의 실효성을 상당한 정도로 보장하여야 한다. 따라서 국가배상청구권의 성립요건으로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을 요구할 것인지 여부 역시 원칙적으로 입법자의 형성재량에 맡겨져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불합리하여 국민의 국가배상청구를 현저히 곤란하게 만들거나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다면 이는 입법형성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므로 헌법에 위반된다(헌재 2018. 8. 30. 2014헌바180등 참조).

  심판대상조항 중 문제되는 부분은 긴급조치 제1호,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을 통하여 국가가 의도적·적극적으로 행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도 해당 직무행위를 수행한 담당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국가배상청구권을 인정하는 내용이다. 이로써 긴급조치 제1호, 제9호에 기한 불법행위 중 고문이나 폭행 등 별도의 불법행위가 개재되지 아니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그 위법성의 정도가 아무리 크더라도 국가배상청구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따라서 심판대상조항 중 긴급조치 제1호,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을 통하여 국가가 의도적·적극적으로 행한 불법행위에 관한 부분이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일탈하였는지 여부는 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권이 사실상 부정되는 것이 지나치게 불합리한지에 달려 있다.

  (5) 위와 같은 판단기준에 따라 살펴보면, 심판대상조항이 긴급조치 제1호,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을 통한 국가의 의도적·적극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직무행위를 수행한 개별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을 요구하는 것은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일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 법치국가원리는 국가에 의한 적법한 공권력 행사를 전제로 하므로, 국가에 대해 위법한 행위의 결과를 가능한 광범위하게 제거할 것과 위법하게 행사된 공권력으로 인해 손해를 입은 국민에게 효과적인 손해보전을 행할 것을 명한다. 이러한 점에서 국가배상책임제도는 법치국가원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헌재 2015. 4. 30. 2013헌바395 참조).

  다른 한편 법치주의는 공무원으로 하여금 법령을 준수하고 법령에 따라 공권력을 행사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법령 자체의 위법성의 정도와 그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의 정도가 심대하고, 해당 법령의 정당성의 기초가 객관적으로 상실될 정도로 규범과 정의 사이에 감내할 수 없는 충돌이 있는 예외적인 규범에 대해서는 그 준수가 마땅히 부인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체 헌법 질서의 관점에서 법치주의가 요청하는 정의의 명령이자 당위이다.

  긴급조치 제1호와 제9호는 그러한 예외적인 규범에 해당한다. 따라서 국가의 긴급조치 제1호,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을 통한 의도적·적극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공무원 개인의 법령준수의무와 같은 일반적인 법 논리에만 의지하여 국가의 면책을 용인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요체로 하는 헌법의 기본 이념과 도저히 양립할 수 없고, 결국 법치주의에 큰 공백을 허용한다.

  또한 헌법 제10조 제2문은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헌법상 기본권 보호의무를 지는 국가가 긴급조치 제1호,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을 통해 의도적·적극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심대하게 침해하였음에도, 기본권 침해를 일으킨 직무행위를 실제 수행한 공무원 개인의 독자적인 고의 또는 과실이 없다면 국가배상청구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헌법 제10조 제2문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고, 헌법상 국가배상제도의 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헌재 2018. 8. 30. 2014헌바148등; 헌재 2018. 8. 30. 2014헌바180등 참조).

  (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가가 긴급조치 제1호,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을 통하여 의도적·적극적으로 행한 불법행위는 국가가 개별 공무원의 행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여 이루어졌다는 특징이 있다. 그 과정에서 해당 공무원이 스스로의 의지나 생각에 따라 그 행위를 회피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경우에도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에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을 요구한다면, 국가가 의도적이고도 적극적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함으로써 일반적인 불법행위에 비하여 그 위법성이 매우 큰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오히려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부당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는 국가의 조직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므로, 국가배상을 통한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취지에 반한다.

  (다) 국가배상책임은 사회공동체의 배분적 정의의 실현 또는 사회적 공평의 확보에 이념적인 기초를 두고 있다(헌재 2015. 4. 30. 2013헌바395 참조).

  긴급조치 제1호와 제9호는 헌법의 문언에 명백하게 반하는 국가긴급권 행사로서 이를 통해 국가는 의도적·적극적으로 불법행위를 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헌법적 질서를 훼손하였다. 이러한 불법적인 국가작용이 공동체의 가치체계에 초래한 균열을 고려할 때, 그에 대해 국가가 아무런 손해배상책임을 지지 않음으로써 피해자를 외면하는 것은 사회공동체의 배분적 정의라는 국가배상제도의 본질에 비추어 보아도 타당하지 않다.

  (라) 헌법 제29조는 공무원 개인의 책임 성립을 국가배상책임 성립의 필수적인 전제로 요구하거나, 국가의 배상책임이 성립하는 요건과 공무원의 배상책임이 성립하는 요건이 일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다.

  긴급조치 제1호,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을 통한 국가의 의도적·적극적 불법행위를 직접 수행한 개별 공무원에게 규범의 위헌성 여부를 심사할 권한도 없었고, 불법적인 국가작용에 저항할 것을 기대할 수 없었던 경우라면, 그 불법행위를 수행한 공무원 개인에게 법적 책임을 지우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개별 공무원의 배상책임과 국가의 배상책임이 법리적으로 구별되는 이상, 개별 공무원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하여 그 공무원의 행위가 ‘국가의 불법행위’가 아닌 것이 되어 ‘사실상 정당’한 것으로 전환될 수는 없다.

  (마) 국가배상제도에 직무상 불법행위를 한 공무원에 대한 제재기능 및 불법행위 억제기능이 있다는 점은 국가배상책임이 공무원의 책임을 일정 부분 전제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데 중요한 논거가 된다(헌재 2015. 4. 30. 2013헌바395 참조). 그러나 긴급조치 제1호,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을 통한 국가의 의도적·적극적 불법행위는 국가가 개별 공무원의 행위를 실질적으로 지배한 가운데 이루어진 것으로, 이러한 경우에도 공무원에 대한 제재기능 및 불법행위 억제기능을 들어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을 위하여 개별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부족하고 헌법상 국가배상제도의 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바) 국가배상청구권은 헌법 제10조에 따라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를 지는 국가가 오히려 국민에 대해 불법행위를 저지른 경우 이를 사후적으로 회복·구제하기 위해 마련된 기본권이다. 이 점을 감안한다면, 긴급조치 제1호,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을 통하여 국가가 의도적·적극적으로 행한 불법행위로 국민이 입은 기본권 침해의 구제를 제한함에 있어서 선례가 설시한 국가재정의 고려는 중대한 요소로 평가하기 어렵다.

다. 결론

  이상과 같이 심판대상조항 중 ‘긴급조치 제1호,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을 통한 국가의 의도적·적극적 불법행위에 관한 부분’은 관여 공무원 개인의 고의 또는 과실이 있어야만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하도록 하여 국민의 국가배상청구를 현저히 곤란하게 만들거나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 것으로서,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일탈하여 청구인들의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반된다.

 

재판장 재판관 유남석

           재판관 이선애

           재판관 이은애

           재판관 이종석

           재판관 이영진

           재판관 김기영

           재판관 문형배

           재판관 이미선

 

 

[별지 1]

청구인 명단 생략

[별지 2]

당해사건 목록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