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 이사회 규정에 의하면 보증행위에 관하여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하는데, 피고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고 원고에게 피고가 甲의 채무를 보증한다는 의미의 확인서를 작성해 준 경우,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위 확인서에 기한 보증채무의 이행을 구한 사안>
사실관계
원고는 甲에게 30억 원을 대여하면서 피고 대표이사로부터 甲이 이를 변제하지 못하면 피고가 이를 대위변제하겠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작성받았는데, 보증행위에 관해 이사회 결의를 거치도록 정한 피고의 이사회 규정에도 불구하고 피고 대표이사는 피고의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고 위 확인서를 작성해 주었음. 원고가 피고에 대하여 위 확인서에 기한 보증채무의 이행을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고, 이에 피고는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고 한 행위로서 상대방인 원고가 이사회 결의가 없었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으므로 확인서는 무효라고 다투었다.
판단
제1심은 피고 대표이사가 이 사건 확인서를 작성하면서 피고의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은 사실은 인정되지만, 상대방인 원고가 이사회 결의가 흠결되었음을 알았다고 볼 증거가 없고 원고가 알지 못한 데에 과실이 있다고 할 수도 없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다.
원심 역시 피고의 항소를 기각하여 제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대법원은 위 법리에 따라 원고가 이사회 결의피고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았음을 알았다고 볼 증거가 없고, 이를 알지 못한 데에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볼 수도 없으므로, 이 사건 확인서에 기한 보증채무의 이행을 구하는 원고의 청구를 인용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하여 상고를 기각하였다.
다수의견에 대하여,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할 대외적 거래행위에 관해 이를 거치지 않은 경우 거래 상대방이 이사회 결의가 없었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가 아니라면 그 거래행위는 유효하다는 기존 판례를 변경할 필요성이 없다는 대법관 박상옥, 대법관 민유숙, 대법관 김상환, 대법관 노태악의 반대의견이 있고,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재형의 보충의견이 있다.
대법원 2021. 2. 18. 선고 2015다45451 전원합의체 판결 [보증채무금]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에 따라 일정한 거래행위를 하도록 되어 있는데도 이사회 결의 없이 거래행위를 한 경우에 거래 상대방인 제3자는 어떠한 범위에서 보호되는지 여부 1. 대표이사의 대표권에 대한 내부적 제한과 선의의 제3자 보호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는 대외적으로는 회사를 대표하고 대내적으로는 회사의 업무를 집행할 권한을 가진다. 대표이사는 회사의 행위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행위 자체를 하는 회사의 기관이다. 회사는 주주총회나 이사회 등 의사결정기관을 통해 결정한 의사를 대표이사를 통해 실현하며, 대표이사의 행위는 곧 회사의 행위가 된다. 상법은 대표이사의 대표권 제한에 대하여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정하고 있다(상법 제389조 제3항, 제209조 제2항). 대표권이 제한된 경우에 대표이사는 그 범위에서만 대표권을 갖는다. 그러나 그러한 제한을 위반한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회사의 권리능력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면 대표권의 제한을 알지 못하는 제3자는 그 행위를 회사의 대표행위라고 믿는 것이 당연하고 이러한 신뢰는 보호되어야 한다(대법원 1997. 8. 29. 선고 97다18059 판결 참조). 일정한 대외적 거래행위에 관하여 이사회 결의를 거치도록 대표이사의 권한을 제한한 경우에도 이사회 결의는 회사의 내부적 의사결정절차에 불과하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거래 상대방으로서는 회사의 대표자가 거래에 필요한 회사의 내부절차를 마쳤을 것으로 신뢰하였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부합한다(대법원 2005. 5. 27. 선고 2005다480 판결, 대법원 2009. 3. 26. 선고 2006다47677 판결 참조). 따라서 회사 정관이나 이사회 규정 등에서 이사회 결의를 거치도록 대표이사의 대표권을 제한한 경우에도 선의의 제3자는 상법 제209조 제2항에 따라 보호된다. 거래행위의 상대방인 제3자가 상법 제209조 제2항에 따라 보호받기 위하여 선의 이외에 무과실까지 필요하지는 않지만,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제3자의 신뢰를 보호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보아 거래행위가 무효라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중과실이란 제3자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이사회 결의가 없음을 알 수 있었는데도 만연히 이사회 결의가 있었다고 믿음으로써 거래통념상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현저히 위반하는 것으로, 거의 고의에 가까운 정도로 주의를 게을리 하여 공평의 관점에서 제3자를 구태여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볼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제3자에게 중과실이 있는지는 이사회 결의가 없다는 점에 대한 제3자의 인식가능성, 회사와 거래한 제3자의 경험과 지위, 회사와 제3자의 종래 거래관계, 대표이사가 한 거래행위가 경험칙상 이례에 속하는 것인지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그러나 제3자가 회사 대표이사와 거래행위를 하면서 회사의 이사회 결의가 없었다고 의심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일반적으로 이사회 결의가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의무까지 있다고 볼 수는 없다(위 대법원 2006다47677 판결 참조). 2. 상법 제393조 제1항에 따른 대표이사의 대표권 제한과 선의의 제3자 보호 대표이사의 대표권을 제한하는 상법 제393조 제1항은 그 규정의 존재를 모르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일률적으로 적용된다. 법률의 부지나 법적 평가에 관한 착오를 이유로 그 적용을 피할 수는 없으므로, 이 조항에 따른 제한은 내부적 제한과 달리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이 조항에 정한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등의 행위’에 관하여 이사회의 결의를 거치지 않고 거래행위를 한 경우에도 거래행위의 효력에 관해서는 위 다.에서 본 내부적 제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보아야 한다. |
사 건 2015다45451 보증채무금
원고, 피상고인 주식회사 우진기전
소송대리인 변호사 정용인 외 7인
피고, 상고인 대우산업개발 주식회사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화우 외 11인
원 심 판 결 서울고등법원 2015. 7. 10. 선고 2014나10801 판결
판 결 선 고 2021. 2. 18.
주 문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이 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지난 다음 제출된 상고이유보충서 등은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에서)를 판단한다.
1. 피고가 이사회 결의 없이 이 사건 보증을 한 것에 대해 원고가 ‘선의의 제3자’로서 보호받을 수 있는지 여부(상고이유 제3점)
가. 쟁점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에 따라 일정한 거래행위를 하도록 되어 있는데도 이사회 결의 없이 거래행위를 한 경우에 거래 상대방인 제3자는 어떠한 범위에서 보호되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쟁점이다.
나. 대표이사의 권한과 이사회 결의사항
일반적으로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는 회사의 권리능력 범위 내에서 재판상 또는 재판 외의 모든 행위를 할 수 있다(상법 제389조 제3항, 제209조 제1항). 그러나 그 대표권은 법률 규정에 따라 제한될 수도 있고(이를 ‘법률상 제한’이라 한다) 회사의 정관, 이사회의 결의 등의 내부적 절차, 내부 규정 등에 따라 제한될 수도 있다(이를 ‘내부적 제한’이라 한다).
법률상 제한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경우는 상법 제393조 제1항이다. 이 조항은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등 회사의 업무집행은 이사회의 결의로 한다.’고 정함으로써, 주식회사의 이사회는 회사의 업무집행에 관한 의사결정권한이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주식회사가 중요한 자산을 처분하거나 대규모 재산을 차입하는 등의 업무집행을 할 경우에 이사회가 직접 결의하지 않고 대표이사에게 일임할 수는 없다. 즉, 이사회가 일반적·구체적으로 대표이사에게 위임하지 않은 업무로서 일상업무에 속하지 않은 중요한 업무의 집행은 정관이나 이사회 규정 등에서 이사회 결의사항으로 정하였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반드시 이사회의 결의가 있어야 한다(대법원 2010. 1. 14. 선고 2009다55808 판결, 대법원 2019. 8. 14. 선고 2019다204463 판결 참조).
그리고 상법 제393조 제1항에 정해진 ‘중요한 자산의 처분이나 대규모 재산의 차입 등의 업무’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주식회사의 정관이나 이사회 규정 등에서 대표이사가 일정한 행위를 할 때에 이사회의 결의를 거치도록 정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를 법률상 제한과 구분하여 내부적 제한이라고 한다.
다. 대표이사의 대표권에 대한 내부적 제한과 선의의 제3자 보호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는 대외적으로는 회사를 대표하고 대내적으로는 회사의 업무를 집행할 권한을 가진다. 대표이사는 회사의 행위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행위 자체를 하는 회사의 기관이다. 회사는 주주총회나 이사회 등 의사결정기관을 통해 결정한 의사를 대표이사를 통해 실현하며, 대표이사의 행위는 곧 회사의 행위가 된다. 상법은 대표이사의 대표권 제한에 대하여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정하고 있다(상법 제389조 제3항, 제209조 제2항).
대표권이 제한된 경우에 대표이사는 그 범위에서만 대표권을 갖는다. 그러나 그러한 제한을 위반한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회사의 권리능력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면 대표권의 제한을 알지 못하는 제3자는 그 행위를 회사의 대표행위라고 믿는 것이 당연하고 이러한 신뢰는 보호되어야 한다(대법원 1997. 8. 29. 선고 97다18059 판결 참조).
일정한 대외적 거래행위에 관하여 이사회 결의를 거치도록 대표이사의 권한을 제한한 경우에도 이사회 결의는 회사의 내부적 의사결정절차에 불과하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거래 상대방으로서는 회사의 대표자가 거래에 필요한 회사의 내부절차를 마쳤을 것으로 신뢰하였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부합한다(대법원 2005. 5. 27. 선고 2005다480 판결, 대법원 2009. 3. 26. 선고 2006다47677 판결 참조). 따라서 회사 정관이나 이사회 규정 등에서 이사회 결의를 거치도록 대표이사의 대표권을 제한한 경우에도 선의의 제3자는 상법 제209조 제2항에 따라 보호된다.
거래행위의 상대방인 제3자가 상법 제209조 제2항에 따라 보호받기 위하여 선의 이외에 무과실까지 필요하지는 않지만,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제3자의 신뢰를 보호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보아 거래행위가 무효라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중과실이란 제3자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이사회 결의가 없음을 알 수 있었는데도 만연히 이사회 결의가 있었다고 믿음으로써 거래통념상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현저히 위반하는 것으로, 거의 고의에 가까운 정도로 주의를 게을리하여 공평의 관점에서 제3자를 구태여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볼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제3자에게 중과실이 있는지는 이사회 결의가 없다는 점에 대한 제3자의 인식가능성, 회사와 거래한 제3자의 경험과 지위, 회사와 제3자의 종래 거래관계, 대표이사가 한 거래행위가 경험칙상 이례에 속하는 것인지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그러나 제3자가 회사 대표이사와 거래행위를 하면서 회사의 이사회 결의가 없었다고 의심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일반적으로 이사회 결의가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의무까지 있다고 볼 수는 없다(위 대법원 2006다47677 판결 참조).
라. 상법 제393조 제1항에 따른 대표이사의 대표권 제한과 선의의 제3자 보호
대표이사의 대표권을 제한하는 상법 제393조 제1항은 그 규정의 존재를 모르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일률적으로 적용된다. 법률의 부지나 법적 평가에 관한 착오를 이유로 그 적용을 피할 수는 없으므로, 이 조항에 따른 제한은 내부적 제한과 달리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이 조항에 정한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등의 행위’에 관하여 이사회의 결의를 거치지 않고 거래행위를 한 경우에도 거래행위의 효력에 관해서는 위 다.에서 본 내부적 제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보아야 한다.
(1) 어떠한 거래행위가 상법 제393조 제1항에서 정한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등’에 해당하는지는 재산의 가액과 총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 회사의 규모, 회사의 영업이나 재산 상황, 경영상태, 자산의 보유목적 또는 차입 목적과 사용처, 회사의 일상적 업무와 관련성, 종래의 업무 처리 등에 비추어 대표이사의 결정에 맡기는 것이 적당한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5. 7. 28. 선고 2005다3649 판결, 대법원 2008. 5. 15. 선고 2007다23807 판결 참조). 그런데 대표이사와 거래하는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회사의 구체적 상황을 알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회사와 거래행위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위와 같은 사정을 알아야 할 필요도 없고, 알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설령 상대방이 그러한 사정을 알고 있더라도, 해당 거래행위가 대표이사의 결정에 맡겨져 있다고 볼 수 있는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구체적인 사건에서 어떠한 거래행위가 상법 제393조 제1항에서 정한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등’에 해당하는지는 법률전문가조차 판단이 엇갈릴 수 있는 영역으로 결코 명백한 문제가 아니다.
(2)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이사회 결의를 요구하는 근거가 상법 제393조 제1항인지 아니면 정관 등 내부 규정인지에 따라 상대방을 보호하는 기준을 달리한다면 법률관계가 불분명하게 될 수밖에 없다. 중과실과 경과실의 구별은 상대적이고 그 경계가 모호하며, 개별 사건에서 구체적 사정을 고려하여 과실의 존부와 그 경중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사회 결의가 없는 거래행위의 효력을 판단할 때 상법 제393조 제1항에 따라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하는 경우에는 ‘선의·무과실’의 상대방을 보호하되 정관 등에서 이사회 결의를 거치도록 정한 경우에는 ‘선의·무중과실’의 상대방을 보호하는 식으로 구별하는 이른바 이원론은 회사를 둘러싼 거래관계에 불필요한 혼란과 거래비용을 초래한다. 이러한 이원론에 따른다면, 정관 등 회사 내부 규정에서 이사회 결의를 거치도록 정한 경우에도 회사로서는 거래행위가 상법 제393조 제1항에서 정한 사항에 해당한다고 주장·증명하여 상대방의 보호 범위를 좁히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거래행위가 상법 제393조 제1항에서 정한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등’에 해당하는지는 위 (1)에서 본 여러 구체적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법원의 심리부담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
이와 달리 상법 제393조 제1항의 경우에도 내부적 제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상법 제209조 제2항을 적용한다면, 회사가 정관 등 내부 규정에서 이사회 결의를 거치도록 정한 거래행위는 상법 제393조 제1항이 적용되는지와 상관없이 이사회 결의가 없었다는 점에 대해 거래 상대방에게 악의 또는 중과실이 있었는지 여부만을 판단하면 되고, 이로써 법률관계를 단순화하여 명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3) 지배인이나 표현대표이사와 거래한 상대방은 과실이 있더라도 중과실이 아닌 한 보호받는다(대법원 1997. 8. 26. 선고 96다36753 판결, 대법원 1999. 11. 12. 선고 99다19797 판결 참조). 대표이사는 지배인이나 표현대표이사보다 강력한 권한을 가진다. 상법 제393조 제1항에서 요구하는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거래상대방에게 무과실을 요구하는 것은 진정한 대표이사와 거래한 상대방을 지배인이나 표현대표이사와 거래한 상대방에 비하여 덜 보호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형평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납득하기 어렵다.
(4) 대표이사가 회사를 대표하여 거래행위를 할 때 이사회 결의는 회사의 내부적 의사결정절차에 불과하다. 대표이사가 필요한 내부절차를 밟았을 것이라는 점에 대한 거래 상대방인 제3자의 신뢰는 이사회의 결의를 필요로 하는 근거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내부적 제한을 위반한 경우에만 경과실 있는 상대방을 보호함으로써 상법 제393조 제1항에 해당하는 행위인지 아니면 단순한 내부적 제한에 해당하는 행위인지에 따라 거래 상대방이 기울여야 할 주의의무의 정도를 달리 본다면, 상대방으로서는 회사의 내부적 사정까지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불필요한 거래비용을 증가시켜 회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5) 상법 제393조 제1항에 따라 이사회 결의가 필요한 경우와 정관 등 내부 규정에 따라 이사회 결의가 필요한 경우를 구별할 수 있지만, 종래 대법원은 이를 구분하지 않고 단순히 이사회 결의 흠결에 대해 상대방이 선의·무과실인지에 따라 거래행위의 효력을 판단해 왔다. 이것은 대표이사의 권한이 어떠한 방식으로 제한되었는지와 상관 없이 대표이사가 한 대외적 거래행위의 효력에 관해서는 상법 제393조 제1항의 경우를 내부적 제한의 경우와 완전히 구별하여 다루기보다는 개별 사건에서 사안에 따라 거래 상대방의 선의나 과실을 고려하여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6) 상법 제393조 제1항에서 요구하는 이사회 결의가 흠결된 거래행위에 대해서 어떠한 기준에 따라 그 유·무효를 판단할 것인지는 회사의 대외적 거래관계에서 회사와 거래 상대방, 나아가 이해관계인 사이에서 이사회 결의 흠결로 인한 위험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분배할 것인지를 정하는 문제이다. 주식회사에서 이사회 결의는 회사 내부의 절차이다. 제3자가 회사의 이사회 결의가 없었다고 의심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회사 내부에서 발생한 위험을 대표이사와 거래한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동안 판례가 내부적 제한을 위반한 거래행위와 상법 제393조 제1항의 법률상 제한을 위반한 거래행위를 구분하지 않고 그 효력을 같은 기준으로 판단한 데에는 위와 같이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따라서 상법 제393조 제1항에 따라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하는데도 이를 거치지 않고 대표이사가 거래행위를 한 경우에도 대표이사의 대표권이 내부적으로 제한된 경우와 마찬가지로 규율하는 것이 타당하다. 대표이사가 상법 제393조 제1항의 법률상 제한에 따라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하는지 아니면 단순한 내부적 제한에 따라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하는지는 거래 상대방의 악의 또는 중과실을 판단하는 단계에서 개별적으로 고려할 요소 중 하나일 뿐이고, 이러한 구별을 이유로 대표이사의 행위를 신뢰한 제3자를 보호하는 기준 자체를 달리 정할 것은 아니다.
마. 판례 변경
이와 달리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할 대외적 거래행위에 관하여 이를 거치지 않은 경우에 거래 상대방인 제3자가 보호받기 위해서는 선의 이외에 무과실이 필요하다고 본 대법원 1978. 6. 27. 선고 78다389 판결, 대법원 1995. 4. 11. 선고 94다33903 판결, 대법원 1996. 1. 26. 선고 94다42754 판결, 대법원 1997. 6. 13. 선고 96다48282 판결, 대법원 1998. 7. 24. 선고 97다35276 판결, 대법원 1999. 10. 8. 선고 98다2488 판결, 대법원 2005. 7. 28. 선고 2005다3649 판결, 대법원 2009. 3. 26. 선고 2006다47677 판결, 대법원 2014. 6. 26. 선고 2012다73530 판결, 대법원 2014. 8. 20. 선고 2014다206563 판결 등을 비롯하여 그와 같은 취지의 판결들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에서 모두 변경하기로 한다.
바. 사실관계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따르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1) 원고는 전기기기 제조·판매업 등을 영위하는 회사이다. 피고는 회생절차가 진행 중이던 대우자동차판매 주식회사에 대한 회생계획이 인가됨에 따라 위 회사의 건설사업 부문을 승계하여 설립된 회사로서, 2011. 12. 30. 회생절차가 종결되었다. 황길신도시필유 주식회사(이하 ‘황길신도시필유’라 한다)는 광양 황길지구 토지구획정리조합과 광양 황길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이하 ‘이 사건 사업’이라 한다)에 관하여 시행대행계약을 체결한 시행대행사였다.
(2) 피고는 2012. 1.경 우림건설 주식회사에서 총괄사장으로 재직하던 소외 1을 영입하여 2012. 2. 3. 사장으로, 2012. 3. 27. 대표이사로 선임하였다. 피고는 2012. 3.경 수주심의위원회의 심의절차를 거쳐 소외 1이 우림건설 주식회사에 근무할 때 추진하던 이 사건 사업을 수주하기로 결정하고, 우림건설 주식회사와 위 회사의 기성공사를 일정 지분으로 인정하는 공동시공 협약을 맺었다. 피고는 2012. 3. 22. 주식회사 현이앤씨, 황길신도시필유와 이 사건 사업에 관한 협약을 맺었는데, 황길신도시필유가 이 사건 사업의 시행을 대행하고, 피고가 공사의 시공을, 주식회사 현이앤씨가 필요한 초기 사업자금 등의 조달을 맡기로 하였다.
(3) 주식회사 현이앤씨는 초기 사업자금을 투입하지 못하였고, 황길신도시필유는 피고에게 초기 사업자금을 대여해 달라고 요청하는 등 필요한 사업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피고 대표이사 소외 1은 원고에게 황길신도시필유에 대한 자금 대여를 부탁하였다.
원고는 향후 이 사건 사업의 전기공사 등을 수주받을 의향으로 황길신도시필유에 30억 원을 대여하기로 하고, 2012. 4. 10. 피고 대표이사 소외 1의 사무실에서 소외 1, 원고의 실질적 경영자인 소외 2, 황길신도시필유의 실질적 경영자인 소외 3 등이 참석한 가운데 황길신도시필유와 아래와 같은 이 사건 소비대차계약을 하였다.
‘원고는 황길신도시필유에 30억 원을 대여하되, 6개월 내에 원금 30억 원에 배당금 30억 원을 더한 60억 원을 4회에 걸쳐 변제받는다. 만일 변제기일에 이를 변제하지 못하면, 황길신도시필유는 원고에게 광양 황길지구 토지구획정리조합으로부터 부여받은 모든 사업상 권리를 30억 원에 양도한다.’ 그리고 황길신도시필유의 실질적 운영자이자 이사인 소외 3과 대표이사 소외 4는 황길신도시필유의 채무를 연대보증하였다.
(4) 피고 대표이사 소외 1은 같은 날 위 사무실에서 원고에게 “단, 2012년 4월 10일 체결한 상기 두 회사간의 금전소비대차 계약내용이 진행되지 못하였을 경우 대여금의 원금을 대위변제한다.”라는 내용이 포함된 피고 명의 확인서(이하 ‘이 사건 확인서’라 한다)를 작성해 주었는데, 확인서 말미에는 피고의 상호와 주소, ‘대표이사’라는 문구가 타이핑되어 있고, ‘대표이사’라는 문구 옆에 소외 1이 본인의 이름을 수기로 기재하였다.
(5) 당시 피고의 이사회 규정에 따르면, ‘다액의 자금도입 및 보증행위’를 이사회 부의사항으로 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외 1이 원고에게 이 사건 확인서를 작성해 줄 당시 피고의 이사회 결의는 없었다.
(6) 2012년 피고의 자산은 약 1,700억 원, 매출은 약 1,000억 원에 이르렀다.
사. 이 사건에 관한 판단
이러한 사실관계를 위에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된다.
(1) 이 사건 당시 피고의 자산과 매출 규모, 원고·피고의 거래관계, 확인서 작성 경위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가 이 사건 확인서를 작성하여 30억 원의 채무를 보증하는 행위는 피고의 이사회 규정에 따라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할 사항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2) 원고가 피고 이사회 결의 없이 이 사건 확인서가 작성되었음을 알았다고 볼 증거는 없다.
(3) 다음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 이사회 결의 없이 이 사건 확인서가 작성되었음을 제3자인 원고가 알지 못한 데에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볼 수도 없다.
원고의 실질적 운영자인 소외 2는 평소 친분이 있던 소외 1의 부탁으로 황길신도시 필유에 30억 원을 빌려주는 이 사건 소비대차계약을 체결하였는데, 피고가 황길신도시 필유의 채무를 보증하지 않았다면 원고는 이 사건 소비대차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피고 회사의 규모, 이 사건 확인서를 통해 피고가 부담하게 되는 위험의 정도 등에 비추어 볼 때, 30억 원의 채무를 보증하는 취지의 이 사건 확인서를 작성하기 위해 피고가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한다는 점이 대외적으로 명백한 것은 아니다. 회사와 거래하는 상대방은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거래에 필요한 내부절차를 밟았을 것으로 신뢰하였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부합하는데, 이 사건에서 원고가 이 사건 확인서 작성에 관하여 피고 이사회 결의가 없었다고 의심할 만한 특별한 사정을 인정하기 어렵다.
아. 원심판단의 당부
같은 취지에서 이 사건 확인서가 소외 1 개인의 의사표시가 아니라 피고의 의사표시로서 인정되고, 이사회 결의 없이 피고 대표이사 소외 1이 이 사건 확인서를 작성하였다고 하더라도 피고는 원고에게 이 사건 확인서에 따른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본 원심의 결론은 옳다. 원심판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처분문서의 해석,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은 의사표시의 효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2. 원고의 황길신도시필유에 대한 차용금채권이 대물변제로 소멸하였으므로 피고에게 이 사건 확인서에 따른 청구를 할 수 없는지 여부(상고이유 제1점)
원심은 황길신도시필유가 이 사건 사업의 시행대행권을 상실하였고, 이 사건 소비대차계약에 따른 차용금채무의 변제를 갈음하여 이 사건 사업의 시행대행권을 양도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황길신도시필유가 그 후 원고에게 이 사건 사업 시행대행권의 양도 절차 진행을 요청하였다고 하더라도 차용금채무가 대물변제로 소멸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판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처분문서의 해석, 연대보증인에 의한 대물변제 가능성, 대위변제 청구의 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3. 원심이 피고의 대표권 남용 주장에 관한 판단을 누락하였는지 여부(상고이유 제2점)
판결서의 이유에는 주문이 정당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당사자의 주장, 그 밖의 공격·방어방법에 관한 판단을 표시하면 되고 당사자의 모든 주장이나 공격·방어방법에 관하여 판단할 필요가 없다(민사소송법 제208조). 법원의 판결에 당사자가 주장한 사항에 대한 구체적·직접적인 판단이 표시되어 있지 않더라도 판결 이유의 전반적인 취지에 비추어 그 주장을 인용하거나 배척하였음을 알 수 있는 정도라면 판단누락이라고 할 수 없다. 설령 실제로 판단을 하지 않은 부분이 있더라도 그 주장이 배척될 것이 분명한 때에는 판결 결과에 영향이 없어 판단누락의 잘못을 이유로 파기할 필요가 없다(대법원 2013. 10. 31. 선고 2011다98426 판결, 대법원 2017. 12. 5. 선고 2017다9657 판결 참조).
기록에 따르면, 피고는 2014. 4. 1.자 준비서면에서 ‘원고는 소외 1이 피고를 위하여 이 사건 확인서를 작성한 것이 아니라 자신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하여 권한을 남용하였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았거나 알 수 있었으므로 이 사건 확인서는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였고, 2014. 11. 12. 원심 제1차 변론기일에 위 준비서면을 진술하여 대표권 남용 주장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원심은 피고가 이 사건 확인서에 따른 보증인으로서 원고에게 황길신도시필유가 차용한 원금 30억 원과 그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면서도 피고의 대표권 남용 주장에 관해서는 명시적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그러나 원심판결 이유의 전반적 취지에 비추어 원심판결에는 피고의 위 주장을 배척하는 취지가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고, 기록을 살펴보아도 피고의 위 주장 사실을 인정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나타나 있지 않다. 원심판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대표권 남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판단을 누락하여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
4. 결론
피고의 상고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하도록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이 판결에는 대법관 박상옥, 대법관 민유숙, 대법관 김상환, 대법관 노태악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었고,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재형의 보충의견이 있다.
5. 대법관 박상옥, 대법관 민유숙, 대법관 김상환, 대법관 노태악의 반대의견
가. 반대의견의 요지
다수의견은 요컨대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함에도’ 이를 거치지 않고 거래행위를 한 경우에 거래 상대방이 선의·무중과실이라면 그 거래행위가 유효하다고 봄으로써, 거래 상대방이 선의·무과실이어야 거래행위가 유효하다고 보았던 지금까지의 확립된 판례를 모두 변경한다는 취지이다.
반대의견은 판례변경에 반대한다.
먼저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하는 경우’가 모두 대표이사의 대표권에 대한 제한에 해당한다는 전제 하에 상법 제209조 제2항이 전면적으로 적용된다고 보는 것은 부당하다.
다음으로 거래 상대방을 보호하는 기준을 ‘선의·무과실’에서 ‘선의·무중과실’로 변경하는 것은 거래안전 보호만을 중시하여 회사법의 다른 보호가치를 도외시하는 것일 뿐더러 ‘전부 아니면 전무’의 결과가 되어 개별 사건을 해결할 때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타당성을 기하기 어렵다. 지금까지의 판례는 선의·무과실의 거래 상대방을 보호한다는 원칙 하에 주식회사의 여러 다양한 실질관계에 따라 보호되는 ’과실‘의 범위를 해석하는 데에 집중하는 한편, 보호되지 않는 경과실의 거래 상대방은 회사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운용함으로써 과실상계를 통한 손해의 공평·타당한 분담을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금까지의 판례가 보호기준으로 삼고 있는 ’선의·무과실‘은 단순한 ‘선의·무과실’이라는 표현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견과 같이 거래 상대방의 보호기준을 ‘선의·무중과실’로 판례를 변경하는 것은 강학적인 의미에서 ‘무과실’을 ‘무중과실’이라는 용어로 대치하는 것 외에 이 사건의 판결결과에 영향이 없고 재판실무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판례를 변경한다면, 거래 상대방의 과실의 정도가 큰 경우에도 중과실에 해당하지 않는 한 그 거래행위를 유효하다고 보게 될 것이어서, 특히 보증과 같은 거래행위를 한 경우에는 회사의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결론적으로 구체적 타당성과 쌍방의 이해관계 조정에 있어 지금까지의 판례가 더 우월하기 때문에 판례변경의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다.
아래에서는 다수의견이 전제로 하고 있는 상법 제209조 제2항은 합명회사의 대표사원에 관한 규정으로서 주식회사의 대표이사에 준용되는 경우에 그 범위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점과, 특히 합명회사에 존재하지 않는 대표이사의 대표권에 대한 법률상 제한에 대하여는 그대로 준용될 수 없다는 점을 밝힌다. 이어서 상법 제393조 제1항에 해당하는 경우에도 상법 제209조 제2항을 적용하기 위하여 다수의견이 들고 있는 논거들을 구체적으로 반박한다. 나아가 주식회사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고 거래행위를 한 모든 경우에 거래 상대방의 보호라는 목적으로 악의 또는 악의에 가까운 중과실 있는 상대방만을 보호 범위에서 제외함으로써 일률적으로 과실 있는 거래 상대방을 보호하고 그 거래행위를 유효하게 취급하는 것은 회사법의 이념과 제도취지에 역행함을 밝힌다.
나. 주식회사의 의사결정구조와 대표이사에 대한 이사회 권한 위임의 한계
(1) 회사는 상행위 기타 영리를 목적으로 하여 설립된 법인으로서 독자적인 권리능력을 가지지만, 사회적 실체로서 그 의사를 결정하고 업무를 집행하며 결정된 의사를 대외적으로 표시하기 위해서는 기관이 있어야 한다. 상법에 규정된 여러 종류의 회사 중에서도 합명회사와 같은 인적 회사에서는 원칙적으로 각 사원이 업무집행권과 대표권을 가지고, 업무집행자와 대표자를 별도로 둔다 하더라도 사원 중에서 선임되어야 하므로 기관자격과 사원자격이 일치하는 데 반하여, 물적 회사인 주식회사에서는 회사의 출자자이자 소유자인 주주로 구성되는 주주총회 외에는 회사의 기관이 되는데 주주로서의 자격을 필요로 하지 아니하는 것이 특색이다(대법원 2017. 3. 23. 선고 2016다251215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주식회사의 기관은 기능에 따라 의사결정기관, 업무집행기관, 감사기관으로 구분할 수 있고, 그중 의사결정기능은 주식회사의 기본적 사항에 대한 의사결정기능, 중요한 사항에 대한 의사결정기능, 일상적인 사항에 대한 의사결정기능으로, 업무집행기능은 대내적인 업무집행기능과 대외적인 업무집행기능으로 각 구분할 수 있다. 주식회사의 기관 중에서도 주주총회는 주주들이 회사의 기본 조직과 경영에 관한 중요 사항에 관하여 회사의 의사를 결정하는 필요적 기관으로서, 상법에 정한 주주총회의 결의사항에 대해서는 정관이나 주주총회의 결의에 의하더라도 다른 기관이나 제3자에게 위임하지 못한다(위 대법원 2016다251215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그러나 회사에 관한 모든 중요한 사항을 주주총회에서 결정하는 것은 막대한 거래비용을 발생시키는 등 효율적이지 않고 현실적으로도 어렵기 때문에 주식회사에 관한 대부분의 입법례는 주주총회는 기본적인 사항에 관한 의사만을 결정하고, 그 밖의 중요한 업무집행에 관한 사항은 주주총회에서 선임된 수인의 이사들로 구성된 이사회가 의사를 결정하도록 한다.
(2) 주식회사에 관한 상법 제393조 제1항은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지배인의 선임 또는 해임과 지점의 설치·이전 또는 폐지 등 회사의 업무집행은 이사회의 결의로 한다.”라고 하여, 이사회가 회사의 업무집행에 관한 의사결정권을 가진다는 점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2001. 7. 24. 법률 제6488호로 개정되기 전의 구 상법 제393조 제1항에서는 ‘회사의 업무집행’이라고만 정하고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단순히 이사회의 권한사항을 규정한 것인지, 아니면 이사회의 권한사항 중 대표이사에게 위임할 수 없고 이사회가 결정해야 하는 전속적 결의사항을 정한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았다. 이러한 불분명한 규정으로 인하여 이사회가 활성화되지 못하였다는 반성에서 2001년 개정 상법에서는 제393조 제1항을 현재와 같이 개정한 것이다. 이는 이사회 결의사항의 범위를 구체화하여 ‘중요한’ 업무집행사항에 대하여는 대표이사에게 위임할 수 없고 반드시 이사회가 스스로 결정하도록 함으로써 실질적인 의사결정 기관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그 권한을 강화하고자 하는 취지이다. 따라서 상법 제393조 제1항에 규정된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등’에 해당하는 업무라면 정관이나 이사회 규정 등에서 이사회 결의사항으로 정해져 있지 않더라도 반드시 이사회의 결의를 거쳐야 한다(대법원 2016. 7. 14. 선고 2014다213684 판결 참조). 또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원칙으로 하는 주식회사에서 주주는 주주총회 결의를 통하여 회사의 경영을 담당할 이사의 선임과 해임 및 회사의 합병, 분할, 영업양도 등 법률과 정관이 정한 회사의 기초 내지는 영업조직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하는 사항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이사가 주주의 의결권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것은, 주식회사 제도의 본질적 기능을 해하는 것으로서 허용되지 않는다(대법원 2011. 6. 24. 선고 2009다35033 판결 참조). 주주총회에서 이사나 감사를 선임하는 경우 그 선임결의와 피선임자의 승낙만 있으면 이사나 감사의 지위를 취득하고 대표이사가 이사나 감사를 선임할 권한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법리(위 대법원 2016다251215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역시 주식회사 의사결정기관과 대표이사 사이의 권한분배를 분명히 하는 내용이다.
상법이 정한 주주총회의 결의사항에 대해서는 다른 기관이나 제3자에게 위임하지 못한다(위 대법원 2016다251215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조직관계를 규율하는 단체법이자 강행법적 성격이 강한 회사법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상법에서 특정한 기관에게 부여한 권한을 다른 기관에게 위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다. 주식회사의 의사결정과 상법 제209조 제2항의 관계
(1) 합명회사에 관한 상법 제209조는, 회사를 대표하는 사원은 회사의 영업에 관하여 재판상 또는 재판외의 모든 행위를 할 권한이 있고, 그 권한에 대한 제한은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상법 제389조 제3항에서는 위 조항을 주식 회사의 대표이사에 준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이사회의 결의를 거치지 않고 제3자와 거래행위를 한 경우 그 법률관계의 해석과 상법 제209조의 준용 범위가 문제된다.
(2) 앞서 보았듯이 합명회사는 원칙적으로 각 사원이 업무집행권과 대표권을 가지고 업무집행자와 대표자를 별도로 두더라도 사원 중에서 선임되어야 하므로 기관자격과 사원자격이 일치하는 반면, 주식회사에서는 기능별로 주주총회, 이사 및 이사들로 구성된 이사회와 더불어 감사 등의 기관이 존재하는 등 회사의 의사결정기능과 업무집행기능 사이의 관계에 있어 합명회사의 경우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특히 상법 제393조 제1항에서 주식회사의 중요한 업무집행에 관하여 이사회가 결의하도록 하고, 같은 조 제2항에서 이사회는 이사의 직무집행을 감독한다고 규정함으로써, 회사의 중요한 업무 집행에 관한 의사결정기능은 원칙적으로 이사회에 있음을 선언하는 동시에 이사회로 하여금 대표이사의 업무집행에 대한 감시와 견제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학계에서는 대표이사가 상법 제393조 제1항에 따른 이사회 결의 없이 거래행위를 한 경우에 ① 상법 제209조 제2항이 전면적으로 준용된다는 견해, ② 제한적 범위에서 준용된다는 견해 및 ③ ‘대표이사에게 의사결정권한이 없다고 상법상 규정된 경우’에는 준용되지 않는다는 견해 등이 대립하고 있다. ① 전면적으로 준용된다는 견해는 “상법 제209조의 규정은 대표이사에 준용한다.”라는 상법 제389조 제3항의 문언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취지이다. ② 제한적으로 준용된다는 견해는 대표이사의 대표권이 제한되는 전형적인 경우인 상법 제393조 제1항의 경우에 상법 제209조 제2항이 전혀 준용되지 않는다고 해석한다면 상법 제389조 제3항의 문언의 한계를 넘어서게 될 것이므로, 상법 제209조 제2항이 준용되기는 하지만 이때의 ‘준용’이란 기계적인 적용이 아니라 맥락에 따른 탄력적 적용을 의미한다고 보고, 입법의 취지를 존중하고 법해석의 통일성을 기하기 위한 해석상의 변용은 가능하다고 본다. 특히 합명회사의 경우 상법상 사원의 대표권에 관하여 정관에 의한 제한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 주식회사에서의 상법 제393조 제1항과 같이 대표권을 법률상 제한하는 조항은 없으므로, 합명회사의 경우와 주식회사의 경우를 정확히 등치할 수 없다는 점에서 준용의 범위가 해석에 의하여 제한될 수 있다는 견해이다. ③ 나아가 준용되지 않는다는 견해는, 상법 제389조 제3항이 준용하는 상법 제209조 제1항이 “재판상 또는 재판외의 모든 행위를 할 권한이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적법한 대표행위를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주식회사의 의사결정권한을 가지는 이사회의 결의를 거치지 않고서도 대표이사가 특정의 대표행위를 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면 오히려 조문의 취지를 벗어난다고 본다. 주식회사에서 대표이사가 갖는 대표권은 법률로부터 부여받은 업무집행권한을 대외적으로 행사하는 것에 불과하고 의사결정권한까지 당연히 포함하는 것은 아니므로, 주주총회 또는 이사회의 결의를 거쳐서 대표이사가 집행해야 하는 사항은 대표이사에게 의사결정권한이 없고, 따라서 이사회의 결의를 거치지 않았다면 주식회사의 의사결정이 없는 것이어서 대표이사는 이를 집행할 수 없다는 견해이다.
이와 같은 주식회사의 이사회와 대표이사의 관계는 오늘날 대부분의 입법례가 취하고 있는 보편적 현상이다. 그리고 위에서 본 해석상의 견해 대립은, 근본적으로 주식회사는 합명회사와 달리 의사결정권과 업무집행권이 원칙적으로 분리되어 있음에도 이에관한 별도의 고려 없이 합명회사에서의 대표권 제한에 관한 상법 제209조를 주식회사의 대표이사에 준용한다는 규정만을 두고 있는 데에서 나온 것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또한 신주발행이나 합병 등과 같이 상법에서 이사회나 주주총회의 결의를 요하도록 하면서 그 결의가 흠결된 경우에는 소로써 해결하도록 규정하였다면 그에 따르면 되지만(상법 제429조, 제529조), 그러한 규정이 없는 주주총회나 이사회 결의가 흠결된 모든 경우의 효과를 개별적으로 고찰하지 않고 ‘대표권 제한’으로 뭉뚱그려 규율하거나 획일적으로 해석하려고 시도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상법 제209조의 해석에 있어서는 의사결정기관과 업무집행‧대표기관이 분리되는 주식회사 기관 구조의 대원칙에 입각하여 접근하여야 하며, 대표이사가 이러한 대원칙을 위반하여 거래행위를 한 경우 그 효력을 판단할 때에는 ‘거래의 안전 보호’와 ‘회사의 재정건전성 확보를 통한 주주, 나아가 회사채권자 보호’라는 충돌하는 이념 간에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 역시 유의하여야 한다.
(3) 법률관계가 통상 내부관계와 외부관계로 나누어 비교적 단순하게 설명되는 합명회사와 달리 주식회사의 법률관계는 내부 또는 외부라는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자본과 주식 및 회사의 여러 기관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합명회사는 회사의 채무에 관하여 직접‧무한책임을 지는 사원들로 구성된다. 정관으로 업무집행사원을 정하지 않은 이상 각 사원이 회사를 대표하고, 정관 또는 총사원의 동의로 회사를 대표할 자를 정할 수 있으며(상법 제207조), 정관에 다른 규정이 없는 이상 각 사원이 회사의 업무집행권을 가진다(상법 제200조). 따라서 합명회사의 경우 업무집행사원의 대표권 제한은 정관에 의한 제한만이 예정되어 있고, 주식회사에 관한 상법 제393조와 같이 법률상 대표권을 제한한 규정을 찾을 수 없다.
반면 주식회사는, 대표이사 외에도 주주총회와 이사, 이사회 등 상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회사의 여러 기관이 존재하고, 상법 제3편 제4장 제3절에서는 주식회사의 기관에 관하여 각 권한의 내용과 행사방법 등을 규정하고 있다. 앞서 보았듯 합명회사는 각 사원이 회사의 업무집행권을 가지는 것이 원칙이지만, 주식회사는 이사회의 결의로 대표이사를 선정하여야 한다(상법 제389조 제1항 본문). 이와 같이 선정된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대외적인 업무집행에 관한 결정권한으로서 갖는 대표권은 회사의 정관, 이사회 규정 등에 의하여 내부적으로 제한될 수 있지만,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도 제한될 수 있다. 특히 상법 제393조 제1항은 회사의 중요한 업무집행에 관한 의사결정권을 이사회에게 부여한 조항으로 법률이 대표이사의 권한을 제한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이처럼 대표권의 법률상 제한이 존재하는 주식회사와 그렇지 않은 합명회사의 구조적 차이 등을 고려해 보면, 정관 등 내부규정에 의하여만 대표권이 제한될 것이 예정되어 있는 합명회사의 대표사원에 관한 상법 제209조 제2항을 상법 제389조 제3항에 따라 주식회사의 대표이사에 준용하더라도, 대표이사의 대표권 제한에 관한 모든 경우에 그대로 준용할 것이 아니라 성질상 준용이 가능한 범위에서만 준용되어야 하므로, 상법 제393조 제1항에 따라 이사회의 결의로 회사의 의사결정을 하여야만 하는 경우에까지 적용되어야 한다고 볼 수는 없다.
(4) 합명회사에 관한 상법 제209조가 주식회사에 전면적으로 준용될 수 없음은, 주식회사가 영업의 전부 또는 중요한 일부의 양도 등 행위를 할 때에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를 거치도록 규정한 상법 제374조 제1항의 경우에 현저히 드러난다.
상법 제374조 제1항은 주식회사가 주주의 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를 얻도록 하여 그 결정에 주주의 의사를 반영하도록함으로써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강행법규이다(대법원 2018. 4. 26. 선고 2017다288757 판결 참조). 상법에서 주식회사의 단체적 의사를 결정하는 방법으로 주주총회의 결의를 요하도록 규정한 사항을 주주총회 결의 없이 집행한 경우 이는 무효이고 그 집행행위인 거래의 상대방이 선의라고 하여 보호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대법원 1991. 11. 8. 선고 91다11148 판결 참조) 원칙적인 판례의 태도이자 학계의 지배적인 견해이다. 이는 주식회사의 의사 자체가 흠결된 행위이기 때문이다. 상법 제374조 제1항에서 요구하는 주주총회의 결의가 흠결된 경우에 상법 제209조 제2항을 적용하여야 한다는 해석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라. 상법 제393조 제1항에 따라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함에도 이를 흠결한 대표이사 거래행위의 효력
앞서 본 법리에 입각하여 이 사건 핵심쟁점인, 상법 제393조 제1항에 의하여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함에도 대표이사가 이를 거치지 않고 한 거래행위의 효력에 관하여 살펴본다. 다수의견은 이러한 경우를 포함하여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고 행위한 모든 경우에 상법 제209조 제2항에 따라 선의의 제3자를 보호하되 이때의 선의는 ‘선의·무중과실’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반대의견은 결론적으로, 상법 제389조 제2항에 의하여 준용되는 상법 제209조 제2항은 상법 제393조 제1항과 같이 법률에서 대표이사의 대표권을 제한한 경우에까지 적용될 수는 없다고 본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우선 관련 규정들의 문언을 본다. 상법에서는 대표이사가 상법 제393조 제1항에 따라 요구되는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고 행위한 경우의 효력에 관하여 규정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행위가 무효인지, 아니면 유효라고 보되 이사가 회사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만을 부담한다고 볼 것인지, 또는 무효라고 본다면 어떠한 조건 하에서 무효라고 볼 것인지, 누가 무효를 주장할 수 있는지 등은, 법체계의 조화로운 해석에 맡겨져 있다. 상법 제209조 제2항 역시 ‘선의’라고만 규정하고 있어서 위 규정에 의하더라도 선의·무과실의 제3자만을 보호 할 것인지, 선의이기만 하면 경과실 있는 제3자도 보호할 것인지는 개별 규정들을 종합하여 해석으로 해결할 문제이다.
따라서 상법 제209조 제2항의 문언에 의하면 선의의 제3자와 악의의 제3자로만 구분되지만, 위 규정을 준용하면서 거래안전을 고려하여 무효의 조건과 보호되는 제3자의 범위를 제한하는 해석론, 예를 들면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선의가 아니라고 보거나, ‘알지 못한 데에 중과실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선의가 아니라고 보는 등 위 조항을 세밀하게 해석함으로써 보호의 정도를 달리 보는 견해를 취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므로 설령 상법 제393조 제1항에 따라 요구되는 이사회 결의가 흠결된 경우에 상법 제209조 제2항이 준용된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판례가 선의에 더하여 무과실을 요구한 것이 위 규정에 위배된다고 단정할 것도 아니다.
(2) 또한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상법의 규정 체계와 상법 제209조 제2항이 원래 적용되어야 하는 합명회사와 주식회사의 구조적 차이에 비추어 보면, 위 조항을 주식회사 대표이사의 대표권이 제한되는 모든 경우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3) 아래에서는, 다수의견이 들고 있는 논거들을 구체적으로 반박하기로 한다.
(가) 다수의견은 첫째로, 상법 제393조 제1항의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등’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고려할 요소들로 판례가 들고 있는 사정들을 열거하면서 “거래 상대방은 회사의 구체적인 상황을 알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정을 알아야 할 필요도 없고 알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라거나, “설령 알고 있더라도 해당 거래행위가 대표이사의 결정에 맡기는 것이 적당한 행위인지를 거래 상대방의 지위에서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라고 하고 있다. 이는 결국 거래안전을 보호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그러나 다수의견도 수긍하는 바와 같이 상법 제393조 제1항은 그 규정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일률적으로 적용되므로, 거래 상대방은 법률의 부지를 이유로 위 조항의 적용을 피할 수 없다. 다수의견이 열거하고 있는 사정들, 즉 “재산의 가액과 총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 회사의 규모, 회사의 영업이나 재산 상황, 경영상태, 자산의 보유목적 또는 차입 목적과 사용처, 회사의 일상적 업무와 관련성, 종래의 업무 처리 등”의 사정들은 ‘거래 상대방’이 아니라 ‘법원’이 상법 제393조 제1항의 중요한 업무인지 여부를 판단함에 고려하는 제반사정들로서 거래 상대방이 이러한 사정을 모두 알도록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거래행위가 상법 제393조 제1항이 적용되는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등 회사의 중요한 업무’에 해당한다면, 이는 거래 상대방 입장에서도 다액의 자금을 대여하거나 중요한 자산을 매수하는 등의 업무일 것이므로, 그 상대방이 합리적인 주의를 기울여 의사결정을 하고 또 거래행위를 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주식회사와 종전에 거래한 경험이 있는 거래 상대방이라면, 종전 거래의 이행결과, 거래의 내용과 규모 등에 있어 종전 거래와 문제된 현재의 거래의 차이, 거래경위의 특이성 유무 등을 인식하고 거래에 임할 수밖에 없다. 그 주식회사와 처음 거래하는 거래 상대방이라면 통상 거래행위를 할 때에 확인할 것으로 경험칙상 예상할 수 있는 사정들, 즉 주식회사의 법인등기부 등본에 기재된 회사의 자본금 규모, 회사의 설립목적 등과 해당 거래행위의 내용과 규모를 비교하여 거래에 임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판례가 요구하는 판단기준은 이와 같은 ‘거래의 경험칙’을 바탕으로 법원이 고려할 사항들을 열거한 것이고, 법원은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하여, 문제된 거래행위가 상법 제393조 제1항에서 정한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등’에 해당하는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다만 다수의견이 지적하는 대법원 2005. 7. 28. 선고 2005다3649 판결 등 2001년 상법 개정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선고된 대법원 판결에서 상법 제393조 제1항에 의한 대표권 제한을 순수한 내부적 제한과 구별하지 않은 듯한 판시가 포함되어 있기는 하다. 그 사안은 주식회사측에서 이사회규정을 제시하면서 당해 거래에 이사회 결의가 불필요하다고 적극적으로 대처하였던 사안으로서 거래 상대방의 신뢰를 보호할 필요성이 뚜렷하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다.
나아가 이후의 판례는, “상법 제393조 제1항에서 주식회사의 이사회는 회사의 업무집행에 관한 의사결정권한이 있음을 밝히고 있으므로, 주식회사의 중요한 자산의 처분이나 대규모 재산의 차입행위뿐만 아니라 이사회가 일반적·구체적으로 대표이사에게 위임하지 않은 업무로서 일상 업무에 속하지 아니한 중요한 업무에 대해서는 이사회의 결의를 거쳐야 한다.”는 판시를 반복함으로써[대법원 2010. 1. 14. 선고 2009다55808 판결, 대법원 2011. 4. 28. 선고 2009다47791 판결, 대법원 2016. 7. 14. 선고 2014다213684 판결, 대법원 2017. 12. 22. 선고 2012다75352(본소), 2012다75369(반소) 판결, 대법원 2019. 8. 14. 선고 2019다204463 판결 등] 상법 제393조 제1항에 의하여 이사회 결의를 필요로 하는 중요한 의사결정과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별하는 것으로 법리가 정리되었다.
(나) 다음으로, 다수의견은 “상법 제393조 제1항에 의하여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하는 경우에는 선의·무과실의 거래 상대방을 보호하고, 정관 등으로 이사회 결의를 거치도록 한 내부적 제한의 경우에는 선의·무중과실의 상대방을 보호하자는 견해”를 상정하여 이를 이른바 ‘이원론’으로 칭한 다음, 이 견해를 비판하고 있다. 반대의견은 다수의견이 칭하는 이원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본 바와 같이 ① 다수의견이 법률상 제한에 대하여 과실 있는 거래 상대방까지 보호할 것을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상법 제209조 제2항을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것의 법리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 ②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은 대표이사의 거래행위에 대하여 선의·무과실의 거래 상대방을 보호함을 원칙으로 하는 현행 판례가 타당하므로 판례변경이 필요하지 않음을 주장하는 것으로 다수의견이 전제하고 있는 이원론과는 결을 달리한다.
(다) 다수의견은, 지배인이나 표현대표이사와 거래한 상대방은 과실이 있더라도 중과실이 아닌 한 보호받으므로, 이보다 강력한 권한을 갖는 대표이사와 거래한 상대방에 대하여만 무과실을 요구함으로써 덜 보호하는 것은 형평의 관점에서 어긋난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지배인이나 표현대표이사에 대한 상법상 규율과 부합하지 않는다. 표현대표이사는 대표이사의 대표권에 대한 법률상 제한과 무관한 제도로서, 원래 대표권이 없는 사람의 대표행위에 대하여 상법 제395조가 일정한 요건 하에 ‘선의의 제3자에 대하여 책임을 지도록’ 규정한 것으로 그 요건과 법률상 효과를 위 조문에서 바로 명시하고 있다. 또한 외관의 형성에 회사의 귀책사유가 있을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사회의 결의를 거치지 않고 대표이사가 거래행위를 한 경우 회사의 귀책사유 유무를 따지지 않는 상법 제393조 제1항의 경우와는 요건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지배인의 대리권에 관한 상법 제11조 역시 지배인은 ’영업에 관하여‘ 대리권을 갖고 지배인의 대리권에 대한 제한은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지배인과 거래한 상대방의 보호는 위 법조문의 해석에 따르면 되고, 위 조문상 지배인의 권한제한은 ‘영업’에의 포함 여부일 뿐, 상법 제393조 제1항에서 대표이사의 대표권을 제한하는 것과 같은 규정이 아니며 달리 그와 같은 규정을 찾아볼 수 없다.
이와 같이 조문의 형태는 물론, 제도의 취지와 요건이 다른 경우들과 비교하여 거래 상대방의 ’중과실‘ 여부만을 논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라) 또한 다수의견은 이사회 결의는 회사의 내부적 의사결정절차에 불과하다고 보고,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은 회사 내부에서 발생한 위험이라고 전제한 다음 이사회 결의를 거쳤을 것으로 신뢰한 거래 상대방은 원칙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논의를 전개한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주식회사에 있어서는 그 본질상 ‘의사결정주체’와 ‘업무집행주체’가 분리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 사건 쟁점이 파생된 것이다. 이사회 결의가 회사의 내부적 의사결정절차라는 점은 이 사건 쟁점의 시작이지 어느 한 견해의 논거가 될 수 없다.
마. 구체적으로 타당성 있는 문제의 해결과 쌍방의 이해관계 조정
(1) 우리나라는 1962년 상법 제정 시 주주총회, 이사회, 대표이사를 중심으로 주식회사의 기관 구조를 설정한 이래 현재까지 근본적인 변화 없이 주식회사 기관 구조의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상법 제정 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적 상황이 변화하고, 주식회사의 규모, 주주구성 등이 보다 다양해진 현대에는 주식회사의 현실에 맞추어 그 기관의 구조가 재설계될 필요가 있다. 이에 상법은 이후의 개정 과정에서 자본금 총액이 10억 원 미만인 소규모 회사에 대하여 주주총회의 소집절차와 결의절차를 간소화하고(상법 제363조 제4항) 이사의 수를 1인 또는 2인만 둘 수 있도록 하며(상법 제383조 제1항), 감사를 선임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등(상법 제409조 제4항)의 규정을 두었다. 이에 따라 소규모 회사로서 이사의 수가 3인 미만인 경우에는 이사회 결의로 해야 할 사항의 일부는 주주총회 결의 사항으로, 또 일부는 대표이사의 권한으로 규정되어 있다(상법 제383조 제4항 내지 제6항). 이는 소규모 주식회사에 있어서는 이사가 명목적으로만 선임되는 경우가 빈번하고, 이사회가 거의 개최되지 않고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는 현실을 고려하여, 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메우고 소규모 회사의 경영조직상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규정들이다. 국내에 자본금 총액이 10억 원 미만의 회사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위와 같은 특칙은 시장의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상당한 효용이 있다.
이에 비하여, 다양한 다수의 이해관계인이 관여하는 대규모 주식회사, 특히 상장회사에서는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도모하면서도 준법경영을 위한 감사 제도 등을 정비할 필요가 있고, 동시에 여러 회사 기관 사이의 권한 분장을 명확히 함으로써 불필요한 분쟁을 방지해야 하므로,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상법 제542조의2 이하에서 상장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특례규정을 두고 있다.
이처럼 상법 제3편(회사) 제4장에서 규정하고 있는 ’주식회사‘라 하더라도, 그 실질과 규모에 있어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기 어려운 폐쇄회사적 성향이 강할 수밖에 없는 소규모 회사부터 앞서 본 대규모 상장회사에 이르기까지 유형이 다양하고 이에 대응하여 개별 회사, 개별 거래마다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구체적·개별적 규율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 이미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향후 법률의 개정으로 주식회사의 기관 구성과 각 기관 사이의 권한분장 등에 관하여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명문의 규정을 두도록 제도가 설계되는 것이 이상적이겠으나, 입법이 실현되기 전까지 이러한 탄력성과 유연성은 결국 재판절차에서 당사자의 과실을 판단하는 등의 과정에서 구현될 수밖에 없다. 당사자의 과실은 선험적인 것으로 ’있다 또는 없다‘라는 단정적인 개념이라기보다 개별 재판의 현장에서 당사자들이 주장·증명하는 많은 간접사실들을 종합하여 판단이 이루어지는 법관의 규범적 판단 영역이기 때문이다.
(2)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지금까지 판례의 흐름을 살펴본다.
상법은, 주식회사가 신주를 발행할 경우에 이사회가 결정하도록 하는(상법 제416조) 등 대표이사의 대표권을 제한하는 여러 조항을 두고 있다. 대법원은 이 사건 쟁점인 상법 제393조 제1항에서 정한 이사회 결의를 흠결한 경우에는 상대방의 악의 내지 과실 여부에 따라 그 효력을 달리 판단하면서도, 상법 제416조에서 정한 이사회 결의 없이 신주를 발행한 경우에는 그 신주발행이 유효하다고 보았고[대법원 2007. 2. 22. 선고 2005다77060(본소), 2005다 77077(반소) 판결 참조], 상법 제374조 제1항에서 요구되는 주주총회 결의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주주총회 결의의 외관을 현출하는 데에 회사가 관련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경우”에는 회사의 외부적 행위를 유효한 것으로 믿고 거래한 자에 대해 회사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함으로써(대법원 1993. 9. 14. 선고 91다33926 판결 참조)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를 요하는 경우임에도 이를 거치지 않은 법률행위의 효력에 관하여 일률적으로 무효를 선언하지 않고 예외를 허용하는 등 상법에서 대표이사의 대표권을 제한하고 있는 각 행위의 유형, 회사의 존속과 대외적 거래관계에 미치는 영향 등에 따라 각 요건을 흠결한 행위의 효력을 달리 판단하여 왔다.
지금까지 판례의 태도는, 법률에서 이사회 결의를 거치도록 규정한 입법자의 의도를 존중하는 한편, 각 행위의 유형 등에 따라 회사와 거래 상대방에게 미치는 영향에서 차이가 있음을 고려하여, 회사의 보호와 거래 상대방의 보호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고자 하였던 고민의 결과이자 노력의 산물이다. 동시에 이는 채권자와 주주, 근로자 등 다수 이해관계인이 존재하는 주식회사가 당사자로서 대외적 거래행위를 하는 경우에, 상법 제209조 제2항의 단일한 법조문에 의한 해결이라는 이론적 정합성만을 내세우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3) 상법 제393조 제1항의 해석에 관한 지금까지 판례에 의한 구체적인 규율의 실태를 살펴본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지금까지 판례는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함에도 이를 거치지 않고 대외적 거래행위를 한 경우에 그 거래행위를 유효로 보기 위해 거래 상대방의 선의·무과실을 요구한다. 나아가 대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거래 상대방으로서는 회사의 대표자가 거래에 필요한 회사의 내부절차는 마쳤을 것으로 신뢰하였다고 보는 것이 일반 경험칙에 부합하는 해석이고, 거래 상대방의 악의 또는 과실은 회사가 증명해야 한다고 판시함으로써(대법원 2014. 6. 26. 선고 2012다73530 판결 등 참조), 대표이사와 거래한 상대방을 폭넓게 보호하여 왔다. 즉, 이 사건 쟁점 판단에 있어서의 판례 법리는 단순히 “상대방이 선의·무과실인 경우에만 보호된다.”라는 취지가 아니라, 회사에게 상대방의 과실에 관한 증명책임을 지우는 한편 거래 상대방의 신뢰를 일반적인 경험칙으로까지 보고 있는 것이다.
먼저 상법 제393조 제1항에서 규정한 중요한 사항에 속하지 않아서 대표이사에게 의사결정권이 위임된 사항임에도 ‘이사회 규정’ 등 내부적 제한으로 인하여 대표권이 제한된 경우를 본다. 대표권이 내부적으로 제한된 경우에 있어서 거래 상대방의 선의의 대상은 ① 당해 거래에 대하여 이사회 결의를 필요로 하는 내부 규정이 존재한다는 점과 ② 이에 따른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데 ②는 ①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결국 전제가 되는 주된 사항은 ‘이사회 결의가 필요하다는 내부적 제한의 존부’가 핵심적인 사항인데, 이러한 대표권 제한의 내용은 정관의 절대적 기재사항에 속하지 않고(상법 제289조 제1항) 일반적으로 공시되지도 아니하므로, 이러한 사정을 알지 못한 제3자를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 따라서 이때 판례의 태도는 거래 상대방이 알 수 없는 주식회사 내부의 규정까지 확인하여 거래해야 하는 부담으로부터 상대방을 해방시켜서 “설령 내부규정이 존재하더라도 내부에서 거쳐야 하는 절차는 모두 마쳤으리라고 신뢰하였다면 이를 보호한다.”라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비하여 상법 제393조 제1항의 법률상 제한의 경우에는 거래 상대방은 ① 설령 당해 거래에 대하여 상법 제393조 제1항에 의하여 이사회 결의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알지 못하였더라도 이를 주장할 수 없다. 다만 ②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한 선의·무과실을 주장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상법 제391조의3에 의하면 이사회의 의사에 관하여는 의사록을 작성하여야 하고(제1항), 의사록에는 의사의 안건, 경과요령, 그 결과, 반대하는 자와 그 반대이유를 기재하고 출석한 이사 및 감사가 기명날인 또는 서명하여야 한다(제2항). 이러한 규정의 취지에 비추어 보면 상법 제393조 제1항에 따라 반드시 이사회의 결의를 거쳐야만 하는 중요한 자산의 처분 등에 관하여 이사회 의사록이 작성되지 않았다면 이사회의 결의가 있었음을 인정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고[대법원 2017. 12. 22. 선고 2012다75352(본소), 2012다75369(반소) 판결 참조], 상법 제393조 제1항에 따라 이사회의 결의를 요하는 법률상 제한에 해당하는 거래를 한 거래 상대방이 이사회 의사록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거래를 하였다면, 그러한 상대방의 신뢰를 보호할 필요성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미 대법원은, 상법 제393조 제1항에서 말하는 중요한 자산의 처분 또는 대규모 재산의 차입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그 재산의 가액과 총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율, 회사의 규모, 회사의 영업 또는 재산의 상황, 경영상태, 자산의 보유목적 또는 차입 목적과 사용처, 회사의 일상적 업무와 관련성, 당해 회사에서의 종래의 취급 등에 비추어 대표이사의 결정에 맡기는 것이 상당한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고 반복하여 판시하였다(대법원 2005. 7. 28. 선고 2005다3649 판결, 대법원 2008. 5. 15. 선고 2007다23807 판결 등 참조).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의한 주식회사의 회생절차개시신청은 대표이사의 업무권한인 일상 업무에 속하지 아니한 중요한 업무에 해당하여 상법 제393조 제1항에 따라 이사회 결의가 필요하다고 보았고(대법원 2019. 8. 14. 선고 2019다204463 판결 참조), ② 건축분양사업을 영위하는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시공사와 사이에서 미분양 세대의 처리에 관한 내용이 포함된 도급계약을 체결하였음에도 전체 공사물량의 약 77%에 달하는 미분양세대를 도급계약상의 약정과 달리 처분한 경우 그 처분행위 역시 상법 제393조 제1항에 따라 이사회 결의를 요한다고 보았으며(대법원 2011. 4. 28. 선고 2009다47791 판결 참조), ③ 풋옵션 조항에 의해 발생한 주식 매매계약이 상법 제393조 제1항에 정한 이사회 결의 사항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면서, 주식 매매대금의 액수, 회사의 자산과 부채, 연매출액과 당기순이익, 협약 체결 당시의 자본금 액수 등을 고려하였고(대법원 2016. 7. 14. 선고 2014다213684 판결 참조), ④ 주식회사 주식과 경영권을 양도하기로 한 사안에서는 그 대상 자산 등의 가액, 양도대상인 자산이 양도회사의 총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율, 양도회사의 규모, 영업 또는 재산의 상황, 경영상태 등을 종합하여 상법 제393조 제1항의 중요한 자산의 처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였다[대법원 2017. 12. 22. 선고 2012다75352(본소), 2012다75369(반소) 판결 참조].
이처럼 상법 제393조 제1항에서 이사회 결의를 거치도록 한 사항에 해당하는지에 관하여 이미 확립된 판례 법리가 존재하고, 그에 따른 다수 선례가 축적되어 있으므로 다수의견에서 우려하는 바와 같이 상법 제393조 제1항의 해석론이 불확실하다거나 상대방의 예측가능성이 낮다고 볼 수 없다.
(4) 이에 더하여 상장회사라면 특히 상법 제393조 제1항에 따라 이사회의 결의를 필요로 하는 경우 거래 상대방의 주의의무가 강화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상장회사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 외에는 반드시 사외이사를 두어야 하므로 사외이사들까지 포함하여 상법에 정해진 1주일 전에 이사회 소집통지를 발송하고 이사회를 개최하여 결의를 하여야 한다. 물리적으로 법에 정해진 절차를 준수하여 이사회 결의를 얻을 시간상 여유 없이 촉박하게 진행된 거래에서 이사회 회의록 유무를 확인하지 않은 거래 상대방의 경우 그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볼 가능성이 높다.
(5) 나아가 지금까지 판례에 의한다면, 상대방에게 경과실이 있어서 회사와의 거래행위가 무효인 경우에도, 그 거래 상대방은 대표이사가 상법 제393조 제1항에 따라 필요한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고 거래행위를 하였다는 이유로 민법 제756조의 사용자책임 또는 상법 제389조 제3항에 의해 준용되는 상법 제210조의 손해배상책임 조항을 근거로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책임을 구할 수 있다. 이 경우 법원은 회사의 책임을 인정하면서 거래 상대방의 과실을 참작하여 과실상계를 통해 공평한 책임 분담을 도모할 수 있다(대법원 2003. 1. 24. 선고 2000다20670 판결, 대법원 2005. 2. 25. 선고 2003다67007 판결 등 참조).
그런데 이러한 사용자책임 내지 상법 제210조 책임의 경우 상대방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으면 사용자인 회사가 면책된다는 것이 확립된 법리이고, 이때 중대한 과실의 의미는 ‘상대방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피용자의 행위가 그 직무권한 내에서 적법하게 행하여진 것이 아니라는 사정을 알 수 있었음에도, 만연히 이를 직무권한 내의 행위라고 믿음으로써 일반인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에 현저히 위반하는 것으로 거의 고의에 가까운 정도의 주의를 결여하고, 공평의 관점에서 상대방을 구태여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인정되는 상태(대법원 2011. 11. 24. 선고 2011다41529 판결 등 참조)‘로서, 다수의견에서 설시하고 있는 이사회 결의가 없었다는 점에 대한 상대방의 중과실의 내용과 거의 동일하다.
즉, 다수의견은 거래 상대방이 ‘거의 고의에 가까울 정도로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아니한 이상 이러한 무중과실의 거래 상대방은 원칙적으로 보호하겠다는 태도인데, 다수의견에 따라 중과실 있는 상대방에 대하여만 회사와의 거래행위가 무효라고 보게 될 경우, 그러한 중과실 있는 상대방에 대하여는 종래 민법 제756조 또는 상법 제210조에 따라 인정하였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결국 이사회 결의가 흠결된 회사와의 거래행위에 대하여 거래 상대방의 악의나 중과실이 인정되지 않는 대부분의 사안에서는 거래행위를 전부 유효로 인정하고 그렇지 않은 극히 일부의 사안에서는 거래행위를 전부 무효라고 볼 수밖에 없게 된다. 이와 같은 전부 혹은 전무의 결론이 회사법적 관점에서 타당한 것인지 의문이거니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천차만별의 회사들을 둘러싼 소송에서 사안에 따라 유연한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없게 되는 불합리가 발생한다.
다수의견이 말하는 것처럼 회사와 거래 상대방을 포함하여 이해당사자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성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으며, 재판의 지향점이자 올바른 분쟁해결의 원리이다. 다수의견은 일률적으로 모든 주식회사에서 ‘과실 있는 거래 상대방도 보호’하는 것이 합리적 조정방법이라고 보고 있지만, 반대의견은 무과실의 거래 상대방을 보호한다는 원칙하에 주식회사의 실질에 따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거래 상대방은 회사 대표자가 거래에 필요한 회사의 내부절차는 마쳤을 것으로 신뢰하였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부합한다’는 법리를 통하여 거래 상대방의 무과실을 인정하고, 상법 제393조 제1항에서 이사회 결의를 요하도록 규정한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인 경우에는 과실 있는 상대방과 한 거래의 효력은 부정하되 다만 경과실의 거래 상대방이 대표이사의 행위를 신뢰하게 된 경위 등을 따져보아서 거래 상대방의 손해배상청구권 행사를 긍정함으로써 일부 손해를 전보받을 길을 열어놓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판례의 법리는, 거래행위가 무효라고 판단되지만 상대방의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한 영역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에 따르면 특히 과실상계 등을 통해 회사와 거래 상대방 사이에서의 분쟁을 조화롭게 해결할 수 있다. 만약 다수의견과 같이 선의·무중과실의 상대방을 보호하는 것으로 판례가 변경된다면, 회사와 거래상대방 사이의 거래가 유효라고 보거나 무효라고 보는 이분법적 해결만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분쟁해결의 탄력성이 줄어들 수 있다.
바. 대표권 남용 법리와의 정합성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그 대표권의 범위 내에서 한 행위는 설령 대표이사가 회사의 영리목적과 관계없이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그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 할지라도 일단 회사의 행위로서 유효하고, 다만 그 행위의 상대방이 대표이사의 진의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는 회사에 대하여 무효가 된다는 것이 대표이사의 대표권 남용에 관한 확립된 판례(대법원 1997. 8. 29. 선고 97다18059 판결, 대법원 2005. 7. 28. 선고 2005다3649 판결 등 참조)이다. 즉, 대표이사가 대표권의 범위 내에서 행위하였더라도 대표권을 남용하였다면 그 거래 상대방은 선의·무과실인 경우에 한하여 보호된다. 그런데 다수의견과 같이 대표이사의 대표권 제한에 관한 판례를 변경한다면, 대표이사가 상법 제393조 제1항 등 법률에 정하여진 제한에 위반하여 행위한 경우 그 거래 상대방은 선의 또는 무중과실이기만 하면 보호되고, 그 거래행위는 유효하게 된다. 이는 상법 제393조 제1항이라는 명시적인 상법 조항에 위반하여 행해진 위법한 거래행위와 이사회 결의 절차 등 상법에 규정된 요건에 모두 따랐으나 단지 개인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대표이사의 내심의 목적으로 인해 대표권 남용이 되는 거래행위 중에서, 전자의 거래 상대방을 후자의 거래 상대방보다 더 넓게 보호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결론이 형평의 관점에서 타당한지도 의문이다. 다수의견은 이러한 사정에 대한 고려 없이 대표권 제한에 관한 지금까지의 판례 법리를 변경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대표이사 행위의 효력에 관한 회사법 법리의 정합성과도 부합되지 않는다.
사. 이 사건의 검토
(1) 원심까지는 이 사건 확인서의 작성 행위가 피고회사의 이사회 규정에 따른 내부적 제한임을 전제로 심리가 진행되었다. 원심판단과 같이 이 사건 확인서의 의미는 ” 황길신도시필유가 원고에게 차용금 30억 원을 변제하지 못할 경우 피고가 그 채무를 부담한다.“라는 취지이고 따라서 원고에 대한 ‘보증’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럼에도 원심까지 이 사건 확인서의 작성행위가 상법 제393조 제1항의 ‘대규모 재산의 차입’ 에 준하는 행위인지에 관하여 심리가 되지 않았던 것은, 보증행위를 위해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한다는 피고의 이사회 규정이 존재함이 밝혀진 이상 굳이 상법 제393조 제1항의 행위에도 해당하는지 여부를 다투지 않고 원고의 선의·무과실 여부에 집중하였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 회사가 타인의 채무를 보증 또는 연대보증한 행위를 상법 제393조 제1항의 ‘대규모 재산의 차입’에 해당하는 행위로 본 적지 않은 판례가 존재한다(대법원 2014. 6. 26. 선고 2012다73530 판결, 대법원 2014. 8. 20. 선고 2014다206563 판결 등). 또한, 보증행위가 ‘대규모’인지 여부는 액수의 다과만을 기준으로 일률적으로 판단할 것은 아니고 보증의 액수, 회사의 규모, 회사의 영업 또는 재산의 상황, 경영상태, 회사의 일상적 업무와 관련성, 당해 회사에서의 종래의 취급 등에 비추어 대표이사의 결정에 맡기는 것이 상당한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
이러한 법리에 따라 이 사건 기록을 살펴보면, 피고가 황길신도시필유의 채무를 보증하기 위해서는 피고의 이사회 결의가 필요함에도 피고 대표이사 소외 1이 이를 거치지 않고 이 사건 합의서를 작성하였고 원고가 그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볼만한 사정들이 많다.
피고가 2012. 3.경 수주 심의위원회에서 이 사건 사업을 수주하기로 결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당시에 황길신도시필유의 차용금채무를 보증한다거나 어떠한 금전채무를 부담한다는 점에 관한 피고 내부의 의사결정은 없었고, 오히려 피고가 주식회사 현이앤씨, 황길신도시필유와 이 사건 사업에 관한 사업협약을 체결할 당시에는 주식회사 현이앤씨가 사업자금 조달 등의 업무를 맡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피고가 황길신도시필유의 채무를 보증할 법적 의무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피고는 대우자동차판매 주식회사의 회생계획에 따라 위 회사로부터 분할되면서 건설사업 부문을 승계하여 설립된 회사로, 이 사건 당시 자본금의 약 14배에 달하는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던 바, 그때로부터 불과 수개월이 지난 2012. 3.경에 타인의 채무를 보증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원고와 피고 모두 2012년 매출액이 1,000억 원이 넘는 규모의 회사로서, 일반적으로 대외적 거래행위를 할 때에 기대되는 계약 체결의 형식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부합하는데, 이 사건 확인서와 황길신도시필유가 원고에게 작성해 준 소비대차계약서는 대표이사의 집무실이라는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작성되었음에도 두 문서의 형식이 상이하다. 즉, 소비대차계약서는 당사자의 성명과 주소까지 미리 타이핑되어 있었던 상태에서 당사자가 인감만을 날인하여 완성한 것으로 보이는 반면, 이 사건 확인서의 피고 표시는 소외 1이 그 이름을 수기로 기재하였고, 피고의 법인 인감이 아닌 대표이사 소외 1의 개인 도장이 날인되어 있으며, 소비대차계약서는 같은 날 대리인을 통해 사서증서의 인증을 받았는데 이 사건 확인서에 관하여는 그러한 인증을 받았다는 자료가 없다.
이 사건 계약 당시 동석하였던 피고의 부사장 소외 5도 이 사건 확인서 내용 중 특히 “대위변제”가 언급된 단서조항에 관하여는 그 당시에 인식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이 사건 확인서를 작성한 소외 1이 그 작성사실을 피고의 다른 임원들에게 알리거나 이사회 등에서 보고한 적도 없으며, 소외 5 뿐 아니라 다른 피고의 임원이 그 당시에 피고가 이 사건 확인서에 따라 금전채무를 부담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았다고 인정할 만한 자료도 없다.
(3) 사정이 이와 같다면, 원심으로서는 이 사건 확인서 작성을 위해 피고의 이사회 결의가 필요함에도 소외 1이 이를 거치지 않았음을, 원고가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지에 관하여 다시 심리해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원심판단에는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고 거래행위를 한 경우 그 거래 상대방의 선의·무과실의 판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그러므로 원심판결은 파기되어야 한다.
6.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재형의 보충의견
반대의견에서 언급한 몇 가지 사항과 관련하여 다수의견을 보충하고자 한다.
가. 반대의견은 기존 판례가 기준으로 삼았던 ‘선의·무과실’은 단순한 ‘선의·무과실’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기존 판례는 수십 년 동안 이사회 결의가 없었음을 거래 상대방이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가 아니라면 거래행위를 유효라고 반복하여 판결함으로써 ‘선의·무과실’을 기준으로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 없이 한 거래행위의 효력을 판단해 왔다. 대법원은 심지어 이사회 결의가 없었음을 상대방이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이를 알지 못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 거래행위는 유효’라고 본 원심판결에 대해, 위에서 본 기존 판례 법리에 비추어 ‘중대한 과실’ 부분은 잘못이라고 지적함으로써, 중과실의 상대방과 경과실의 상대방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보호대상에서 제외함을 분명히 하였다(대법원 1993. 6. 25. 선고 93다13391 판결 참조). 일반적으로 과실은 경과실을 가리키므로, 기존 판례에서 말하는 ‘무과실’은 문언 그대로 ‘과실, 즉 경과실이 없다’ 는 뜻이고, 상대방에게 중과실이 없다고 하더라도 경과실이 있으면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으로 기존 판례를 해석할 수밖에 없다.
법률은 명확해야 한다. 입법을 할 때 불확정개념이나 추상적 표현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불가피한 경우에만 이러한 개념이나 표현을 사용해야 하고, 법관의 개인적인 선호나 취향에 따라 법률의 의미와 내용이 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명확성의 원칙은 법치국가 원리의 한 표현으로서 모든 법률에서 요구되고, 법률을 해석하여 법리를 선언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대법원은 법률의 해석과 적용에 관하여 명확한 법리를 선언함으로써 법률의 수범자인 국민에게 예측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 반대의견에서 말하는 것처럼 선의·무과실이 단순한 선의·무과실이 아니라고 한다면, 단순한 선의·무과실은 무엇이고 단순하지 않은 선의·무과실과는 어떻게 구별되는 것인지 혼란스럽게 된다.
나. 반대의견에서는, 주식회사의 중요한 자산의 처분이나 대규모 재산의 차입행위뿐만 아니라 이사회가 일반적·구체적으로 대표이사에게 위임하지 않은 업무로서 일상 업무에 속하지 않은 중요한 업무에 대해서는 이사회의 결의를 거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들이 반복됨으로써 상법 제393조 제1항에 따라 이사회 결의를 필요로 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분명히 구별하는 것으로 법리가 정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반대의견에서 들고 있는 판결들은 그 구체적 사안을 살펴보면, 해당 거래행위에 관해 이사회 결의를 거치도록 정한 내부 규정의 존재에 관한 주장·증명이 없이, 오직 상법 제393조 제1항의 업무에 해당하는지 여부만이 쟁점이 된 사안들에 관한 것이다(대법원 2016. 7. 14. 선고 2014다213684 판결을 비롯한 다수의 판결 참조). 개별 사건에서 정관 등 내부 규정의 존재에 대한 주장·증명이 없다면 상법 제393조 제1항에 따라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하는지 여부만이 쟁점이 되고, 결국 법률상 제한 사안으로 귀결됨은 당연하다.
실제로 중요한 문제는 해당 거래행위에 관하여 이사회 결의를 거치도록 정한 내부규정이 있는 사안에 관한 것이다. 다수의견에서 살펴보았듯이 이사회가 일반적·구체적으로 대표이사에게 위임하지 않은 업무로서 일상업무에 속하지 않은 중요한 업무의 집행은 정관이나 이사회 규정 등에서 이사회 결의사항으로 정하였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반드시 이사회의 결의가 있어야 하는 법률상 제한에 해당한다. 따라서 내부 규정이 존재하는 경우라도 순수한 내부적 제한 사안과 상법 제393조 제1항의 법률상 제한과 함께 내부적 제한에 해당하는 사안이 공존한다. 그런데 기존 판례가 내부적 제한 사안과 상법 제393조 제1항에 따른 법률상 제한 사안을 구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해당 거래행위에 관해 이사회 결의를 거치도록 정한 내부 규정이 있다는 점이 밝혀지면, 더이상 상법 제393조 제1항의 중요한 업무의 집행에 해당하는지를 심리할 필요가 없었고, 법원은 거래 상대방의 선의·무과실 여부만을 판단하여 거래행위의 효력을 판단하였으며(대법원 2019. 10. 31.자 2019다259241 판결 등 참조), 이 사건 원심 역시 그와 같이 판단하였다. 이와 달리 내부 규정이 존재하는데도 상법 제393조 제1항에 해당하는지에 관하여 추가로 주장·증명하거나 심리하여 상대방의 선의·무과실 여부를 판단한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기존 판례의 태도가 상법 제393조 제1항에 따라 이사회 결의를 필요로 하는 사안과 그렇지 않고 내부 규정에 따라 이사회 결의를 필요로 하는 사안을 구별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다. 법률은 다른 조건이 같다면 가급적 거래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제정되고 해석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리고 어떤 사태에 대한 위험은 그 위험을 좀 더 쉽게 예견하고 좀 더 적은 비용으로 회피할 수 있는 쪽이 부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회사법은 주주, 이사, 채권자 등 이해당사자들 간의 이해를 적절하게 조정하고 시장에서 거래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운용되어야 한다.
회사와 제3자 사이에서 거래가 이루어진 경우 이사회의 결의가 없다는 이유로 거래행위가 무효로 될 위험을 가장 적은 비용으로 회피할 수 있는 자, 즉 최소비용회피자는 회사이므로, 그러한 위험은 회사가 부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달리 거래 상대방에게 조사의무를 부과하거나 거래행위가 무효로 될 위험을 부담시키는 것은 사회 전체의 거래비용을 증가시키게 된다.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하는 때에 이사회 결의를 거쳤는지는 회사 기관인 이사회와 대표이사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이는 궁극적으로는 회사 내부의 조직과 제도를 통한 경영에 대한 감시, 감독과 견제라는 내부적 지배구조의 문제이다.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하는데도 이를 거치지 않고 어떠한 행위를 할 수 있다면, 이는 회사의 이사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음을 뜻한다. 이사회가 잘 운영되도록 하는 것은 회사 내부의 문제인데, 이사회 기능이 작동하지 못한 위험을 상대방에게 전가할 수 있다면 회사로서는 이사회를 제대로 운영해야 할 유인이 줄어든다. 주식회사 이사회의 권한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이사회 결의 흠결로 인한 위험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것은 위험의 합리적 배분이라는 관점에서 타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회사의 건전한 운영에도 장애가 된다.
따라서 회사 이사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서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하는데도 이를 게을리한 경우에, 그 위험을 거래 상대방에게 전가시키는 방법으로 회사를 보호하기보다는 회사가 그 위험을 부담하되 회사의 손해는 대표이사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등의 방법으로 전보받도록 하는 것이 이사회 권한의 강화 또는 이사회 역할의 정상화라는 관점에서도 바람직하다. 이렇게 할 때 회사도 이사회가 의사결정기관이자 대표이사의 업무집행을 감독하는 기관으로 본래의 기능을 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라. 다수의견은 먼저 ‘선의’라고 규정하고 있는 상법 제209조 제2항의 문언 등에 비추어 이사회 결의가 흠결된 사안에서 기존 판례가 취하였던 선의·무과실보다는 선의· 무중과실의 기준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나아가 상법 제393조 제1항에 따라 이사회 결의를 필요로 하는 경우와 순수한 내부적 제한이 문제되는 경우를 구별할 수 있지만 기존 판례가 이를 구별하지 않고 판단하여 온 까닭을 존중하면서 판례를 통일적으로 변경하였다. 이를 통하여 장차 이사회 결의 흠결 여부를 둘러싼 거래관계의 불명확성을 해소시키려는 것이 다수의견의 취지이다.
재판장 대법원장 김명수
대법관 박상옥
대법관 이기택
주 심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박정화
대법관 안철상
대법관 민유숙
대법관 김선수
대법관 이동원
대법관 노정희
대법관 김상환
대법관 노태악
대법관 이흥구